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걸어와 냉방 장치가 가동되는 한의원에 들어서면서 “아, 덥네!” 하는 사람, 그리고 “와, 시원하다!” 하는 사람.


얼핏 보면 전자는 부정적이고 후자는 긍정적이다. 힐끗 보면 전자는 '아, 옛날이여!’ 스타일이고 후자는 ‘Carpe diem!’ 스타일이다. 긍정의 힘도 이 순간의 충실함도 포르노 사회의 자양분으로 수탈당한다는 사실을 알면 사정은 아연 달라진다.


삼복더위라는 전체 진실에서 볼 때, 냉방 장치 가동되는 시공간은 일시적·부분적인 현실이다. “아, 덥네!” 하는 사람은 그 사유가 전체 맥락에 닿아 있다. “와, 시원하다!” 하는 사람은 전체 맥락이 누락된 눈앞의 현상만 본다. 전체 맥락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문제 지향이다. 눈앞의 현상만 좇는 사람은 해답 지향이다. 해답은 문제 안에 있다.


문제 지향의 사람은 답을 빨리 찾으려고 덤비지 않는다. 덤비지 않는 사람은 더디 간다. 더디 가는 사람은 편의와 향락에 물들지 않는다. 신마저 편의와 향락 앞에 엎어진 21세기, 더디 가는 삶은 욕됨으로 스스로 스미는 것이다. 욕됨으로 스스로 스미는 것은 단순한 실천이 아니다. 실천을 무한히 일으키는 창조다. 창조는 근원인 영점 사건이다. 근원인 영점 사건은 자신을 無로 만들어 모두를 無限이 되게 하는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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