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똑 그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유령처럼 들어서는 광경을 본 제 영혼이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넷 에움 모두 숨죽이는 듯했습니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귀신이 씌웠다고 하면서 그를 골방에 가두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이비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안찰기도 한다며 온몸을 두들겨 팼습니다. 그는 네 차례나 도망쳤습니다. 그때마다 잡혀 들어와 더욱 모질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숨겨두었던 얼마간의 돈을 들려서 제게 보냈습니다. 헐떡임조차 나지막한 숨 사이로 더듬더듬 기어가던 그의 이야기는 얼마 못 가 멈추었습니다. 말할 기력도 부치거니와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겹겹 쌓인 고개를 넘어가기 무서웠던 것입니다. 저는 그를 잠시 누워 쉬게 했습니다. 한참 뒤, 저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얀 종이에는 큼직한 글자 두 개가 쓰여 있었습니다.


“가출”


심신이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서도 그는 단호히 결단했습니다. 이튿날 가방 두 개를 들고 한의원에 나타났습니다. 두 명의 친구 집에서 하루씩 묵은 뒤 한의원으로 돌아왔기에 ‘마침 봄이기도 하니 한의원에 머무르면서 갈 곳을 찾아보라.’ 일렀습니다. 밥도 사먹고 영화관도 가고 책도 사 볼 수 있게 얼마간 용돈을 쥐어주었습니다. 사흘 지나 그는 꽤 여러 날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그가 말했습니다.


“시력이 떨어져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젠 파란 나뭇잎이 보여요.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이젠 내용이 머리에 들어와요. 식욕이 없어 도통 먹을 수 없었는데 이젠 맛있어요. 이거 다 먹을 거예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그는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며 그렇게 존엄한 식사를 그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작별인사를 하는 그에게 한약과 용돈을 건네며 말해주었습니다.


“부디 자기 자신의 연인으로 사세요. 스스로 연애를 걸지 않는데 누가 있어 프러포즈를 해오겠어요.”


그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습니다. 어름어름 잊힐 만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완전히 탈출했음을 알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제 걱정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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