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암이 발병해 그만두었다가 ‘구름에 달 가듯이’ 교인들과 노닐겠다며 새 교회를 여는 친구 목사 초대로 창립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어떤 부부와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제가 도리어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그들은 그때로부터도 몇 년 전 10대 초반 아들을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뚜렛증후군’이었습니다. 이 질병은 틱 장애가 1년 이상 치료되지 않는 중증 상태입니다.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 최고권위자-무슨 근거에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도 있었답니다. 3년 이상 그렇게 헤맸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애를 끓이던 차에 우연히 한 선배한테 제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바로 이 해후를 가능케 한 제 친구 목사였습니다.
상황 설명을 간략하게 들은 다음, 저는 부모를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아이와 단 둘이 마주앉았습니다. 아이는 질병에 시달려 낯빛이 검었습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해 몸이 전체적으로 아주 작았습니다. 저는 아이와 눈을 맞추려고 납작 엎드렸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이 병이 왜 생겼는지 알지?”
아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알아요. 근데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아이는 여태껏 누가 물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3년이나 지나도록, 그의 부모는 그렇다 치고, 수많은 의사들조차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아이는 모를 거라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마음 상태와 무관한 병이라는 잘못된 의학적 판단 때문입니다. 아이가 제게 들려준 사연을,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부모가 들려준 이야기와 결합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때 아버지는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대개 그렇듯 새벽기도회는 늘 전도사 몫이었습니다. 전도사 부부는 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집을 나섭니다. 어느 날 아기가 우연히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본능적으로 더듬어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없습니다. 공포가 들이닥칩니다. 아기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무리 울며불며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듭니다. 돌아온 부모는 여전히 잠들어 있으니 별일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시나브로 숨을 크게 몰아쉬는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합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갑니다. 아이가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자 비로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병의 뿌리가 깊어진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얼른 낫고 싶으냐?’ 물었습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아이를 진단 베드로 안내했습니다. 반듯이 눕힌 다음 ‘하루라도 빨리 고쳐줄게. 그 대신 문제 하나 풀어볼래?’ 하고 아이가 누운 침대로 다가가 우뚝 섰습니다.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올리고 손을 맹수 앞발 모양으로 만들며 ‘어흥!’ 소리를 냈습니다. 재빨리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를 잡아먹으려고 이렇게 호랑이가 달려들 때 넌 어떤 마음이 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니?”
어른 같으면 이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당근, 공포죠.”
아이가 제 의중을 간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공포랑 친구 먹을 수 있어?”
아이는 힘차게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공포랑 친구 먹는’ 이치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아이에게는 숨 막히는 공포가 덮칩니다. 공포로 말미암아 살아남기 위한 첫 방어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는 것입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격정 상태에서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통증이 생깁니다. 통증은 점점 더 강해집니다. 극렬한 통증은 다시 공포를 부릅니다. 이 악순환은 통증을 없앤다고, 숨 크게 몰아쉬기를 없앤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공포가 지니는 양면성을 직시해야만 끊어집니다. 공포는 누구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어둠임과 동시에 생명을 지켜내려면 없어서는 안 될 날카로운 빛의 감정입니다. 이 이치를 알아차린 아이에게 제가 제안했습니다.
“자, 숨 크게 몰아쉬기가 닥쳐온다고 상상하고, ‘친구야, 어서 와!’ 하면서 두 팔 벌려 숨을 더 크게 몰아쉬어보자.”
아이는 ‘상상하는 거 말고 진짜 해볼게요.’ 하면서 잠시 저를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합니다. 제가 나가는 즉시 그 증상이 재현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밖으로 나와서 잠시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가 ‘됐다.’며 손짓합니다. 아이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담은 웃음입니다.
부모는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누군가와 단 둘이서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날, 심지어 첫 만남이었는데 무려 40분이나 함께 대화를 했지 뭡니까. 더군다나 아이가 웃기까지 했으니·······.
그 날부터 꼭 한 달 동안, 아이는 한약 두 제를 먹고 상담을 세 번 더 했습니다. 3년 동안 전혀 변화 없던 아이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남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도리어 불안해하던 부모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부모는 제게 경이로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학교를 갈 수 없어 홈스쿨링으로 견디던 아이가 미국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축구선수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교 회장이라는 것입니다. 아, 아이와 저는 그렇게나 짧은 시간에 그렇게도 놀라운 삶을 함께 준비해갔던 것입니다.
부모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가 갈 천국이 있기는 하다면 저 아이를 치료한 덕분이 아닐까·······.’ 농담만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