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도 모르는 채 아등바등 하다가 스러지는 게 거개 인생입니다. 사랑 또한 같은 운명이 아닐까 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과 그 이야기가 인간사를 수놓지만 정말 사랑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의미를 꼭 알아야 삶도 사랑도 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를 때 빚어지는 어긋남이 생각보다 큰 비극이기에 화두로 들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청소년 티를 아직 벗지 못한 한 청년이 사랑 깊고 품 넓어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귀여움을 잔뜩 머금은 얼굴 어디에도 고통의 그림자는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현재 상태와 자초지종을 대략 설명하는 동안 그 ‘청(소)년’은 미소를 띤 채 원장실 풍경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나가자 분위기가 아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태의 근원은 아버지였습니다. 10대 초반 그는 아버지의 외도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치를 떨 때 보인 어머니의 반응이 급기야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니까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된다, 엄마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 아버지가 가출해서 나쁜 일을 벌일 때마다 어머니는 수습해주고 집에 들였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가출해서 사고치고 어머니한테 손을 벌렸습니다. 그야말로 악무한이었습니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거식과 폭식을 교차 반복하는 상황으로 급속히 빠져들었습니다. 폭식의 대상이 소주가 되고 하루 음주량이 깜짝 놀랄 만큼이 되자 허겁지겁 치료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그는 망설이지 않고 건조하게 ‘고마우신 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저는 즉각 질문을 보충설명으로 바꾸었습니다.


“머리에서 하는 판단 말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물었어요.”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는 ‘그런 거 없다.’는 답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저는 일단 문제의식을 발효시키기로 했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숙의를 잠시 멈추고 가능하면 길게 홀로 여행을 떠나도록 했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놔두고 어머니 카드 한 장만 쥔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열흘 채 안되어 느닷없이 그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돌아왔나요?”


잠시 망설이던 그의 입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컥 눈물이 났다.’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정작 충격적인 말은 바로 그 다음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든 느낌이었습니다.”


아뿔싸! 이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저는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를 오시라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말을 전해 듣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한참 울더니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세상 어느 엄마보다 사랑으로 키웠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당연한 의문이 눈빛을 타고 들이닥칩니다.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뒤치다꺼리입니다. 어머니 아니라도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뭔가 잘못했음을 직감으로 느꼈기 때문일 터. 한참 울더니 너무나 중요해서 너무도 진부한 질문을 제게 던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인가요?”


저는 짐짓 큰 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그게 지금 엄마 입에서 나올 소리냐.’며 꾸짖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르겠는 걸 어찌하느냐.’며 다시 오열했습니다. 제가 나지막이 말해주었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동참하려면 어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저는 ‘자꾸 질문하시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결국 묻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머니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우여곡절 끝에 그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만났습니다. 청년 초기 이런 경험을 통해 그가 체득한 사랑이 그의 생을 이끌 힘으로 작동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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