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특정 공간이 몇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대형교회 건물입니다. 그 중에서도 과연 저게 예배당인가를 의심케 하는 강남의 모 교회 건물은 참으로 화려해서 참으로 기괴한 느낌을 줍니다. 이 화려해서 기괴한 교회 안에서 배양되는 신앙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알기 때문입니다.


부티와 교양미를 나름대로 풍기는 노인이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들어섰습니다. 필경 그가 사는 집 인테리어와 비교하면 제 한의원은 허름하기 짝이 없을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정중한 인사로 맞았습니다. 그가 호소하는 불편은 불면증이었습니다. 여러 방식의 진단으로 살펴보니 원인질환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다름 아닌 우울장애였습니다. 제가 설명을 시작하자 다 듣지도 않고 그는 잘라 말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우울장애에 걸리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 귀에는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아요.’와 똑 같은 말로 들렸습니다. 기복종교로 굳어진 한국 개신교의 남발한 부적 문구입니다. 그 동안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우울장애를 치료했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그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이라 했습니다. 저도 더는 예의를 지킬 마음이 없었습니다.


“제 진단에 따르면 어르신의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정하고 우울장애 치료부터 받으시지 않으면 저는 불면증 치료 못합니다.”


그는 크게 화를 내며 일어섰습니다. 저도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간호사님, 환자 분 나가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