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가 정신장애에 더 많이 걸린다는 통계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유한 계층 사람들 가운데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는 공존합니다. 당연히 각기 다른 이유와 똑 같은 근거도 공존합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정신이 피폐해지는 증상과 가진 게 너무 많아 영혼이 파리해지는 증상은 물질에 휘말린 것이라는 하나의 본질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흔히 이렇게들 말합니다. 먹고살기 바쁜데 우울증 걸릴 새가 어디 있어?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이냐? 다시없는 개소리입니다.
그는 유서 깊은 부자 동네 고급 아파트에 삽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법조인입니다. 단정하고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일까요? 툭 치면 바로 울음을 터뜨릴 듯 위태로운 표정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부가 자신에게, 자신의 삶에 무엇인지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있었고 늘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마치 자신의 몸처럼 자각 없이 부려왔습니다. 무심코 그것이 자신의 인격과 정신의 불가결한 일부라고 여겨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던 그 낙원 밖으로 나갈 일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방으로 발령이 난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가로 오기는 하지만, 낯선 지방도시 외곽에서 장기간 홀로 불편한 자취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 갑작스런 분리(!)는 정신적으로 그에게 날카로운 금을 내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의 파고가 높아졌습니다. 불안이 덮치면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습니다. 삶의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갔습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가족은 전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예의 그 전형적인 ‘뭣이 부족해서’ 식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가 악화되자 어머니는 ‘대한민국 최고 병원’으로 그를 데려갔습니다. 정신과전문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몇 가지 물어보더니 약을 처방해주고 2주일 뒤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릴없이 돌아서 나왔습니다. 약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매우 초조해했습니다. 하루 빨리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도 없었습니다. 가족력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특별한 요법을 쓸 수도 없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이치를 설명하고 차분한 상담이 정도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터널을 잘 통과하면 전혀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현백해두었습니다.
그는 세 번째 상담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