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1944년 가을, 이용수 할머니는 군복 차림의 남자에게 끌려가는 바람에 대구를 떠나게 되었다. 경주, 평양, 다렌으로 가서 상하이로 가는 배를 탔다. 일본 장병 여러 명과 한반도 각지에서 끌려온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
어느 군인이, 노래를 부르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구의 야학에서 일본인 선생에게서 배운 야스쿠니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잘 불러서 두 번이나 물렀다. ‘단팥소가 든 떡’을 두 개 받았다.·······
하나를 다른 소녀들과 나눠 먹고, 하나는 남겨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금지되어 있던 한국말을 무심코 해버렸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군인이 입에서 덕을 뱉으라고 명령했고, 떡을 뱉자 군화로 짓밟아버렸다.
그 뒤 이 할머니는 뱃멀미를 했다. 화장실로 가서 토하고 있는 사이, 군인이 덮쳐서 할머니를 범하고 말았다. 다른 소녀들도 배에서 차례로 당했다고 한다.
·······일이 벌어지는 사이사이에 안도 (또는 희미한 기쁨), 그리고 그와 반대로 터무니없는 비참이 있다. 이상한 음식의 베풂과 범죄가 같은 배 안에서 같은 조직을 통해 벌어졌다. 그래서 소녀들의 마음은 바닥에 짓이겨진 떡처럼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떡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짓이겨져 있다.(334-335쪽)
사는 게 모두 먹자고 벌이는 거래임에 틀림없지만 하필 굶주린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밥을 조건으로 내걸어 흥정을 붙이는 것만큼 잔인한 처사는 없다. 어린 시절의 내 ‘팥쥐 엄마’는 나를 집에 남겨두고 아버지와 외출을 하곤 했다. 대부분 영화 관람 후 외식하는 일정이었다.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집 보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수행의 끄트머리에서 그만 살짝 이탈하고 말았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다가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니 팥쥐 엄마가 이미 귀가해 있었다. 내게 내려진 벌은 저녁밥 굶기였다. 다행히 고모 댁 가셨던 할머니께서 돌아오시는 바람에 묻어 숨죽이며 한 끼를 때우기는 했다. 부엌에 선 채 찬밥을 우겨넣던 그 밤의 풍경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연히 떠오른다.
정답고 안정된 밥상은 내게 포원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건성건성 차려 허겁지겁 먹는 밥상을 극도로 못 견뎌 한다. 어쩌다 출근 시간에 쫓긴 아내가 반찬 하나 달랑 놓고 서서 밥 먹는 것을 보면 ‘서서 먹는다고 빨리 먹어지는 거 아니야’ 하고 의자를 내밀어주지만 내심은 이미 격정 상태에 도달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푸드 코트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리 고급이라도 뷔페조차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항차 그 소녀들이야 말해 무엇 할까.
“소녀들의 마음은 바닥에 짓이겨진 떡처럼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떡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짓이겨져 있다.”
여전히 짓이겨진 채, 갈기갈기 찢어진 채, 오늘도 이용수 할머니는 길 위에 서 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