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모녀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메뉴는 흑빵에 꿀과 따뜻한 물이 전부였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 하고 엄마가 말했다. 요가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고기와 탄수화물은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쳐주었다 한다.
고기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생선은 월요일에만 먹는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빵에 카샤, 비스킷, 꿀, 홍차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모녀가 함께 단식을 한다고 한다.
제멋대로인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한테는 달갑잖은 배려 아닌가!
“위가 깨끗해져요.”(268쪽)
눈이 오는 날, 볼쇼이 극장 앞에서 첼로를 켜는 소녀를 보았다.
또 음정이 엇나간 롬베르크의 소나타 E단조, 그것이 끝나면 모차르트의 자장가. 첼로 앞에 검은 종이봉투가 입을 벌리고 있다.
첼로를 켜는 소녀는 화려하고 웅장한 극장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기둥 사이에 있다. 엄마는 일곱 번째 돌기둥 뒤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소녀의 등 뒤로 호텔과 가로수가 아름다운 설경을 이루고 있다. 소녀의 어깨에 눈이 쌓인다. 아무도 돈을 넣지 않는다. 활을 건 소녀의 손이 빨개졌다.
소녀의 집에서 그 날은 고기 없는 날이라는 생각이 불쑥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270쪽)
드라마 한 장면이 아니다. 어디선가 한 번은 실제로 본 듯한 장면이다. 아주 기이한 사연도 아니다. 언제든 우리 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연이다. 그게 내 인생만 아니라면 툭툭 이야기할 법하다.
먹는 것으로 억압받는 일이란 얼마나 서러운가. 내가 사촌에게 그리 했던 짓을 되돌려 받는 형벌이 불과 수 년 뒤에 더 독한 방식으로 들이닥쳤다. 여러 명의 의붓어머니가 나를 가로질러갔는데 그중에는 전형적인 팥쥐 엄마가 하나 있었다. 그는 어른 것 반 정도 크기의 밥공기에 밥을 성글게 대충 담아주었다. 어느 날인가 배가 고팠던지 급하게 그 밥 한 공기를 비우자 ‘식충이처럼 많이 처먹는다.’며 그는 숟가락을 모로 세워 열 살짜리 아이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옆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본 아버지는 고요했다.
나는 그 다음부터 밥숟가락 숫자를 세며 먹는 버릇이 생겼다. 무심코 숫자를 세는 버릇은 다른 데까지 옮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오늘 아침도 지하철역 계단 숫자를 세다가 문득 멈추자 그 일이 기억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 기억이 내게 더 이상 고통의 도화선으로 작동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몸 느낌을 건네준다. 하지만 내 생애 쓸쓸한 풍경 중 하나로 데려가는 안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식충이 취급을 받긴 했지만, 어깨에 눈이 쌓이도록 거리에 서서 언 손으로 구걸하지 않고도 그나마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녀는 제 손으로 구걸해 어미를 먹여 살리면서도 식단을 통제 당했고 심지어 단식을 강요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먹는 게 부실해 위는 이미 깨끗할 텐데 어린 아이에게 이 무슨 횡액인가. 의붓어미도 아니니, 인간이 아니면 이런 일이 대체 어디 무엇에게서 일어난단 말인가.
팥쥐 엄마는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 인간’인 나를 학대했다. 삼층밥 지어서 잘 된 부분만 쏙 빼 먹고 나머지에는 물을 부어 푹 불린 다음 먹게 했다. 부부싸움하면 부엌을 차단한 채 자신만 밥을 지어 먹었다. 과일이나 빵을 딱 한 개만 사오도록 시킨 다음 내가 보는 앞에서 자신이 낳은 딸에게만 먹였다. 주말이면 나를 어디로든 내보낸 뒤 고기를 볶아 먹었다. 5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는 방조범을 넘어 적극적 공동정범이었다.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 이해하지 못하는 심경 한복판에서, 나는 마음 아파 상담 오는 사람들과 비록 5천 원짜리 백반에 막걸리나마 함께 곡진히 먹고 마신다. 언젠가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