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불가사의입니다. 사랑과 학대가 동의어인 에덴동산입니다. 모든 선의와 모든 죄악의 샘입니다. 무조건적인 자비를 행하던 손으로 무자비한 범행을 저질러도 모순을 구성하지 않는 소도입니다. 이 역설로 말미암아 이득을 보는 쪽이 있고 손해를 입는 쪽이 있으며, 이것은 대를 물려 순환한다는 사실 때문에 저 같은 의자醫者는 근본적으로 불편합니다.


평상시 온갖 종류의 짧은 소리나 작은 동작을 되풀이합니다. 심하면 동물 울음소리를 내거나, 크게 정면공격을 당할 때 두 팔을 엇갈려 위로 올리는 방어 동작을 취합니다. 이것이 10대 초반에 저를 찾아온 아이의 틱 증상입니다. 아이의 부모는 길고 격렬한 싸움 끝에 소송을 거쳐 이혼했습니다. 부모 중 일방은 소송에 아이를 끌어들였습니다. 이혼 뒤 아이는 양육권을 가져간 쪽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특히 틱 증상을 보일 때마다 ‘병신 짓’이라며 모질게 욕하고 때렸습니다. 아이가 이쪽저쪽을 오가며 느끼는 불안과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모는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한쪽은 좀 더 폭력적이고, 다른 한족은 좀 더 포용적인 점에서 둘은 분명히 달랐지만,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능동적으로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영혼은 하루하루 파리해져만 갔습니다.


아이의 불안은 집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상황은 같았습니다. 부모 욕하는 인터넷 동우회로 패거리를 이룬 아이들도 거대한 폭력이었습니다. 교사 또한 부모에 버금가는 폭력이었습니다. 아이는 도처에서 밀어닥치는 폭력으로 말미암아 단 한 순간도 안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차분하게 대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폭력 상황을 모면하고 도망가는 쪽으로만 모든 감각이 모여들었습니다. 아이의 삶을 바꾸려면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욕하고 때리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부모 한 쪽이 느닷없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다 전 배우자 잘못이며 아이 양육은 자신의 사명이라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가 왜 왔는지 알아차린 제가 물었습니다.


“그 사명감에 힘입어 폭력을 행사하나요?”


그는 펄쩍 뛰었습니다. 자신은 아이를 때린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부한 진실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언어폭력이 더 잔혹한 폭력인 거 아실 텐데요.”


그는 그조차 부인했습니다. 올바른 말로 훈육했을 따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를 낚아채 황황히 상담실을 떠났습니다. 끌려가며 저를 돌아다보던 아이의 푸른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