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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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그리스도의 살이고, 포도주는 피입니다. 빵도, 포도주도 성체입니다. 기도가 끝나면 먹습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눠 받는 거죠.”(176쪽)


·······성서 낭독을 들으면서 묵묵히 토마토 수프와 채소 스튜를 먹고 있는데, 앞줄에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매부리코 수도사의 사제복 호주머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뭔가가 보였다.

왠지 불길해 보이는 것이 손잡이 부분에 있었다.

설마 하면서도 목을 빼고 뚫어지게 쳐다보니, 그 매부리코 수도사는 그게 걸리적거리는 바람에 제대로 앉기가 힘들었는지 호주머니에서 쑥 빼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식탁에 툭 올려놓는 게 아닌가! 검게 빛나는 권총이었다. 옆에 앉은 수도사는 곁눈으로 보고도 놀라지 않고 채소 스튜를 볼이 미어지도록 먹는다.·······코소보 수도원 중에는 알바니아인 이슬람교도의 습격이 두려워서 권총을 소지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종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성스러운 빵과 권총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178-179쪽)


스스로 장자長子 교단이라 일컬으며 콧대 높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 교단헌법 개정안을 내놨다. 목사는 30세 이상 남성만 가능하다. 목사는 동성애자를 출교시킬 권한을 가진다. 명실상부 ‘개독교’다. 그 ‘개독교’를 지키기 위해 새로 장만한 권총이 교단헌법 개정안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종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나는 알” 만큼 안다.


심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와 같다. 전혀 그렇지 않은 목사가 몇 있다는 사실로 이 진실은 전복되지 않는다. 이 진실의 경계 밖으로 나오려면, 전혀 그렇지 않은 목사 몇은 지금 당장 ‘개독교’ 혁파에 나서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버려야 한다. “검게 빛나는 권총”을 찬 채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눠 받는” 짓을 멈춰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주님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것이다. 종교를 지키려고 종조를 죽이면서 “볼이 미어지도록 먹는” 아귀 같은 삶을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가.


다시 정색하고 물어본다.


“종교란 무엇인가?”


스티브 테일러를 잠시 부른다.


“타락한” 종교들은 세상을 내려다보고 지배하는 의인화한 신들에 대한 숭배에 바탕을 둔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세상을 내려다보고 지배하는 가부장적 남성 권력자가 자신의 아바타로 세운 것이 전지전능한 거대 신이다. 전지전능한 거대 신은 가짜다. 스티브 테일러를 다시 부른다.


“타락하지 않은” 종교들은 세상과 세상 모든 사물에 들어 있는 영적인 힘에 대한 인식과, 세상은 수많은 개별적인 영으로 충만하며, 이것들은 종종 자연현상과 결합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종교가 대표적이다. 세상과 같은 눈높이에서 작디작은 것에 작디작게 배어들고 배어나오는 사람들이 지니는 영성의 네트워크다. 소미심심小微沁心한 신이 진짜다.


진짜 신은 자신의 신봉자들에게 다른 신의 신봉자를 공격하라 명하지 않는다. 진짜 신은 자신의 사제에게 권총 차고 목숨, 아니 종교를 지키라고 명하지 않는다. 진짜 신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기 전에 경전 읽으라, 찬송하라, 기도하라 명하지 않는다. 진짜 신의 살과 피 그 자체가 경전이며 찬송이며 기도다. 경전이며 찬송이며 기도인 신의 살과 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산균이며 이름도 잘 모르는 푸성귀며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좁쌀이다. 유산균 하느님에게 텍스트 없는 경전을, 푸성귀 하느님에게 소리 없는 찬송을, 좁쌀 하느님에게 말 없는 기도를 바치며 거룩하고 신나게 먹는다. 식탁 위에 권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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