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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안개비가 내리는 한낮이 지날 무렵, 잎이 무성한 큰 나무 밑에서 쌀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먹는다.
뜨거운 김으로 뿌옇게 변한 거리를 바라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변한 모습을 떠올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을 꽤나 들여 후루룩거리고 있다. 비가 국수 그릇으로 들어와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늘의 물이라고 여기면 맛이 더 좋아진다. 이것이 베트남 하노이 사람들이 쌀국수를 먹는 법이다. 시정詩情이 흐른다.
한편 도쿄의 서서 먹는 우동가게에서 샐러리맨들이 우동을 먹는 평균시간은 2, 3분쯤이라던가? 운치가 없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듯 먹으면서 일본은 경제를 번영시켜왔다.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의 길고 짧음. 이것이 의외로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노이 시민이 쌀국수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전에 비해 평균 2, 3분은 짧아진 듯하다.
나는 이것을 경제 활성화와 사회 변화의 징조로 본다.(81-82쪽)
한편 새로운 쌀국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닭고기에 소고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넣은 믹스 쌀국수, 고급화를 지향한다. 화학조미료도 이상할 정도로 많이 쓴다.(84쪽)
나는 밖으로 드러내놓고 페미니스트라 말하지는 않는다. 표방하는 일 자체가 그다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공부를 따로 깊이 한 적도 없어 논리적인 사유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성차별 없애는 노력을 그냥 비-학습 실천으로 일상에서 꾸준히 할 따름이다. 그래야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 간단명료한 내 근거다. 대표적인 예가 가사노동의 자연스러운 분담이다. 밥하고 나물 무치고 국 끓이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에서 우리부부는 누가 뭘 해야 한다는 따위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구태여 특이 사항을 꼽는다면 간단한 손빨래 아닌 세탁기 빨래는 내 전담이다. 빨래하는 일의 전반에 내가 훨씬 더 섬세하고 정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이 마냥 매끈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먹는 일을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오랜 습성 때문에 나 스스로 발끈발끈하곤 했다. 어느 날 홀연히 먹는 일보다 더 긴급하고 근원적인 것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홀라당 뒤집어진 뒤에야 비로소 고요해졌다.
먹기 위해 산다고 까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목숨 지닌 존재에게 먹는 일은 예사로운 일상 너머 대수로운 성사다. 신나는 놀이임과 동시에 거룩한 제의다. 그 놀이 시간을 단축하는 것, 그 제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모독이다. 모독은 의외로 쉽게 자행된다. 경제 번영이라는 번드르르한 이름의 돈이 만들어낸 세속화다. 허겁지겁 끼니 때우고 돈을 향해 달려간다. 허겁지겁 “시정” 흐르는 영상은 없다. 허겁지겁 “운치” 있는 풍경도 없다. 시정을 희생하고 운치를 제물 삼아 거머쥔 돈은 대체 무엇에 쓰려는 것일까? 더 비싼 차가 신나고 거룩하게 먹는 일보다 귀한가? 그럴 리가. 더 비싼 집이 신나고 거룩하게 먹는 일보다 귀한가? 그럴 리가. 뭐 그렇다고 떼돈 번 인간들이 세상 구제를 하는 것도 아니잖나. 오호라, 그럼 더 맛있는 것 먹기 위해 미친 듯 돈 버나보다. 먹는 일을 내팽개쳐서 획득하는 ‘더 잘’ 먹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식사 포르노! 정답. 인류는 B급 향락을 위해, 정精한 식사를 내다버리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다.
정精한 식사는 엄숙과 향락 그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엄숙과 향락을 가로지르며 휘돌아가는 사건이다. 그것은 놀이도 놀이답게 살리고 제의도 제의답게 살린다. 둘은 상호보완해서 전체가 되는 부분이 아니다. 꼿꼿이 자신을 유지한 채 마주한다. 충분히 자신을 녹여 서로 배어들고 배어나온다. 자본은 이것을 쪼갬과 동시에 포갠다. 중량급 연예인이 나오는 포르노 ‘먹방’과 다이어트 강연이 동시에 흐른다. ‘셰프’가 영양학을 고리로 의사로 등극한다. 현란한 분열과 절묘한 혼효가 투명한 일치를 이루며 대중은 유아적 소비자로서 온갖 마케팅에 동원된다. 명백한 중독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서, 외마디 소리를 내질러야 산다. 할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밥상 앞에 정좌한다. 시정이 흐르도록 먹는다. 운치 있게 마신다. 낭만주의가 아니다. 실재the Real을 향한 유장한 운동이다. 이 운동에는 “믹스 ”도 “고급화”도 “화학조미료”도 설 자리가 없다. 각기 모습대로, 각기 기품대로, 자연스러운 맛이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