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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참 수수께끼 같은 일이야.”
노인이 멈춰 서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평양전쟁 종전 후 필리핀 내 일본군-필자 보충) 잔류병들이 영양실조 상태였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산속에는 멧돼지와 사슴과 원숭이도 있었다. 산을 조금만 내려가면 토란도 자라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총과 탄약이 있었으니, 단백질이 필요했다면 짐승을 사냥해도 되지 않았을까? 짐승이 아니라면 영양이 풍부한 토란만으로도 꽤 오랫동안 살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을 수십 명이나 먹었다니······.
이것이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말이다.
전쟁과 그에 따른 극한 상황이 인류가 가장 금기시하는 규칙을 깨뜨리고 말았다.
나는 지친 머리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와 동시에 설령 이런 일반론이 모든 전쟁범죄에 들어맞는다고 하더라도, 노인이 말하는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62쪽)
우리가 국권을 상실해 일제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일이다. 일제가 식량은 물론 문고리까지 떼어가던 태평양전쟁 말기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았다.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매우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양식도 미역 한 올도 없는 형편인데 아내가 아기 낳을 날이 임박해왔다. 남편은 희망이 있어서라기보다 다급한 마음에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양식과 미역을 구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놀라서 뛰어 들어가 보니, 문살을 거머쥔 채 아내가 죽어 있었다. 그 옆에는 뜯어먹다 말은 작은 고기 덩어리가 나뒹굴고 있었다. 삶아진 갓난아기였다! 남편은 아내와 아기를 묻고 사흘을 통곡했다. 집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밥투정을 하거나 먹을 것을 함부로 대할 때, 할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참혹하고 애통한 이야기다. 일제 치하 이 백성이 겪은 이 이야기와 그 일제의 군대가 침략한 나라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본문 사건은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너무나 다르고 너무도 같다. 홀로 출산하며 겪은 공포와 고통에 굶주림까지 겹쳐 실성한 상태로 제 아기를 삶아먹은 어미의 심경을 누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겨우 5분 동안 머물렀을 뿐인데도 고독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63쪽)고 묘사한 깊고 험한 산으로 도망간 패잔병 일단이 공유했을 공포와 절망, 아니 오컬트 상황을 누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인간 너머 일이되 인간 이하 짓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이 일을 겪은 당사자 이야기를 더는 끌 수 없다.
우리가 정말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일본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 우리에게 식민통치를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일본은 위 필리핀 식인 사건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이게 일본이다. 일본뿐이겠나. 미국은, 영국은, 독일은, 러시아는, 중국은 이와 다르겠나. 이들이 지구상의 강대국으로 여태까지 인육을 먹는, 인육 먹기를 강요하는 짓을 저질러오지 않았나. 그런 짓은 또 그 아래 국가군으로 내려간다. 대한민국이라고 다르겠나. 우리가 과거 베트남전쟁 때 무슨 짓을 저질렀나. 지금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나. 국가란 이런 것들이다. 인간다운 인간이기 위해 우리는 인간과 인간 이외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 경계에 ‘먹는 인간’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