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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피나투보 산속에서 화전농을 짓고 있던 필리핀 원주민 아에타족의 장로 격인 마가아브 카바리크가 요즘 ‘네스카페’에 푹 빠져 팬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인스턴트커피 회사는 좋아할지 몰라도, 오해 여든 살이 되는 카바리크한테 직접 이야기를 들은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어쩌면 문화인류학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아닐까?
1991년에 일어난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산속 생활을 버리고 산 밑, 하계로 내려온 아에타족은 좀처럼 보기 힘든 야외 생활의 달인들이며 독자적인 시간 감각과 이야기, 그리고 풍부한 자연식 문화를 가진 마음 따뜻한 소수민족이다.
그런데 거의 2년 동안 이어진 산 밑 생활이 그들의 식문화에 분명히 혼란을 가져왔다. ‘하계의 맛’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멀리서 피나투보 산을 바라보며 그 속의 사라져가는 진짜 맛을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기도 했다.
애처로울 정도인 미각의 갈등이 있었다.(44-45쪽)
열 살 이전까지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가 나의 양육을 할머니께 맡기고 서울에서 다른 여성과 재혼해 따로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고향집에 내려와 잠시 머물다 가곤 했다. ‘서울 아버지’가 내게 주었던 선물 몇이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하모니카와 만화책이 대표적인 것이다. 강원도 산골아이인 내게는 물론 마을 아이들에게도 대단한 “충격”이었다. 얼마 못 가서 그 둘 다 도둑맞아 사라지고 말았다.
정작 내게 더 큰 충격은 사탕. 그 맛은 과연 기적이었다. 처음 맛본 황홀경에 다급해진 나머지 나는 어금니로 와드득와드득 사탕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황금 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른 농부처럼. 살살 달래면서 녹여 먹어야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사탕이 다 부서진 다음이었다. 반 백 년도 썩 지난 지금, 사실 나는 단맛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사탕을 와드득와드득 깨뜨려 먹는다.
문명의 힘으로 극단화시킨 맛, 특히 단맛은 인간의 원초 미각을 겨냥해 산업적으로 만들어내는 포르노다. 어떤 의미에서 단맛의 독재라고 해야 맞다. 설탕의 정치경제학을 생각하면 인류가 단맛에 취약해진 것은 세계자본의 전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가 아에타족 장로를 사로잡은 사건은 다만 맛 문제만은 아니다. 인스턴트커피에 설탕이 첨가되면 설상가상이다. 선의로 포장된 자본의 악의에 찬 음모를 냉정하고 예리하게 발라내지 않으면 인류는 달곰쌉쌀한 포르노 커피 맛 등에 취해 멸망할 것이다.
미각은 삶과 일치하는 것일 때 건강하다. 아에타족이 겪는 “애처로울 정도인 미각의 갈등”은 자신의 본디 삶에서 급격하게 분리된 데다 아직 자신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맞닥뜨린 비극적 어긋남이다. 우리사회에도 아에타족과 본질이 같은 분리와 어긋남이 있다. 채널만 돌리면 쏟아져 나오는 ‘먹방’ ‘쿡방’의 ‘셰프’와 연예인, 그리고 음식들은 명백히 그 방송을 보는 대중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생산하는 자본에 관음증 걸린 대중이 굴종하면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