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끝내고 글을 쓰기 위해 한의원 철문을 닫고 막 돌아서는데 누군가 쿵쿵쿵 한의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얼른 문을 열었습니다. 가슴 두근거림을 호소하며 두어 차례 침 맞았던 50대 초반 여인이 어둡고 다급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안으로 맞아들인 뒤 침 치료를 위해 잠시 누워 기다리는 동안 고요히 그 옆에 앉았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여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저 말 좀 해도 되죠?”


문맥도 없이 대중도 없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들을수록 답답하고 대책 없는 사연들이 도무지 이로가 잡히지 않은 채 제각각 '미친년 널뛰듯' 펄떡거립니다. 어느 순간 여인은 꺽꺽 울음을 토해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쥡니다. 가슴을 두드리다 못해 쥐어뜯습니다. 사방팔방 팔을 휘두릅니다. 발버둥을 칩니다. 격심한 몸부림이 쓰디쓴 체취를 낭자하게 흩뿌립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의 아픈 말을 들었습니다. 눈물을 보았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말을 하는 동안, 이 여인이 우는 동안, 저는 차마 그 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손을 잡으면 ‘그만 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그 광경에 주의·집중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저는 칼 날 위에 선 만신이었습니다.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날뛰던 언어와 몸짓과 울음이 한 목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여인은 한참을 죽은 듯 숨소리조차 안 내고 있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무어라 달리 할 말을 찾지 못 했습니다. 이해도 공감도 접근도 해결도 절연된 무력한 타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바로 이제-여기가 상담자의 시공입니다. 저는 여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말을 듣고 황감해 하는 여인의 젖은 영혼에 꽃 같은 한 마디를 놓아주었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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