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주. 어제 그는 ‘박영주’를 떠나 우리가 살아가는 숨결로 돌아왔다. 내게 그의 애칭은 ‘대장’이었다. 그는 내가 가슴에 깊이 품은 애제자다. 내가 그를 아낀 것에 비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대단한 스승이 아니다. 그가 내게서 받은 어떤 가르침을 간직하고 살았는지, 그런 것이 있기는 한지, 알 수 없다. 부산에 강연 가서 만난 이후 30년 가까이 그가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어 스승으로 살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가 한 평생 대장으로 산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의 그런 삶이 그를 소진시켰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의 대장됨은 군림이 아니라 희생이었기에. 나는 그의 그런 삶 일부와 관련이 있다. 결혼 초 한창 고통당할 때, 나는 그가 청한 상담 선생 가운데 하나였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 때 강력하게 이혼을 권했던 쪽이다. 그는 그러나 그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헌신적으로 견뎌냈다.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그가 뒤늦게 이혼을 결행했고, 얼마 뒤 그 후폭풍이랄 수 있는 충격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물론 그 뒤치다꺼리도 그가 다 했다. 이어 병마가 들이닥쳤다. 마침내 일은 여기까지 왔다. 나는 그의 병과 죽음이 이런 그의 삶과 단도직입의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판단에는 醫者의 지견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가 아프기 전, 그러니까 일생일대의 격전을 치르고 난 직후, 그를 보려고 나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저녁 식사하고, 술 한 잔 하는 길지 않은 만남이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영주야, 이제 더는 희생하지 마라.” 너무 때늦은 충고였다.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삼가 존중한다. 딸과 아들을 포함한 그의 가족들이, 벗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삼가 존중한다. 다만 醫者인 스승임에도 그의 삶에 더 깊고 아름다운 치유로 참여하지 못한 큰 빚이 있어 부질없는 비손 하나를 헌정한다.


이제 내가 살아갈 때, 얘야

네가 더는 ‘대장’ 숨결 아니면 좋겠어


이제 한 남자사람 살아갈 때, 얘야

네가 더는 여자사람 숨결 아니면 좋겠어


이제 한 개신교인 살아갈 때, 얘야

네가 더는 ‘예수쟁이’ 숨결 아니면 좋겠어


이제 우리 살아갈 때, 얘야

네가 훨훨 자유 숨결이면 좋겠어





* 영주가 마지막으로 내게 준 편지. 소녀처럼 예쁘게 접었다. 언제나 그랬듯 올라갈 때 교통비 하라고 알뜰히 돈까지 넣었다. 노란 띠가 아름답고도 아프다. 나는 오늘 비로소 길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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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0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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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1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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