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친다.”와 “낫는다.”는 말을·······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사람이 치료하는 것을 “고친다.”고 하고, 생명의 이치 안에서 저절로 나아가는 것을 “낫는다.”고 합니다. 또한 낫는 것처럼 고치는 것이 치료자가 하는 일입니다.·······

·······낫지 않으면 고쳐야 합니다.·······고치면 낫습니다.


·······하지만 낫는 것은 고치는 것의 결과이지만은 않습니다. 서양의료의 문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즉 자기치유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왜 낫는가라는 관점이 결여되어버립니다.


·······서양의학은 진정으로 낫는다는 의미를 모릅니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진정으로 낫는 방식을 모르는 의학이자 치료라는 데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왜 병에 걸리는지 진정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207-209쪽)



서양의학 ‘치료’를 두 가지로 압축한다면 증상 억제와 수술이다. 진통제, 해열제, 소염제, 항생제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약물이 증상 억제제다. 그들은 이 약물 투여를 ‘치료’라 부른다. 물론 치료가 아니다. 대부분 증상 자체가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증상은 자연치유반응이다. 서양의학은 종자오류를 깔고 앉은 신념의 집합물이다.


수술이 일정 정도 치료적 성격을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의 자연치유력을 전제하지 않으면 그조차 전혀 무의미한 토건이다. 자르고 꿰맨 부위 살·신경·혈관들이 스스로를 연결하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전문지식과 공학적 기술로 압도적 권력이 되어버린 서양의학 치료는 생명의 자연치유 공로를 전반적으로 가로채버린다.


의학 치료는 근본에서 보조행위이며 봉사활동이다. 의료인은 음陰의 직업이다. 자본주의가 의학 치료를 권력화하고 의료인을 양지에 올려놓았다. 의료화사회는 포르노로서 의료를 소비한다. 포르노 의료는 진정한 치료, 진정한 자연치유, 진정한 생명력에 전혀 관심 없다. 저들은 디테일한 토건으로 질병을 일으키고 성실한 마케팅으로 환자를 노예로 잡아둔다. 현대의료는 이미 종교적 권위까지 지닌다.


참 의학은 자연의학-기존의 유사의학이 전유해 오염시킨 개념과 다른-이다. 그것은 자연농과 동일한 이치에 입각한다. 참 의자는 자연농자가 하는 정도의 일을 한다. 대원칙, 생명 스스로 낫는 힘을 존중하여 침습하지 않는다. 안 될 때 이런 순서를 따른다. 가장 먼저, 스스로 나을 수 있는 소미한 정보를 전달한다. 다음, 약하면서도 생명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를 전달한다. 다음다음, 강하지만 국소적 영향력을 지닌 에너지를 전달한다. 마지막, 구조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런 의미에서, 참 의학의 길로 복귀하려면 변방 의학, 심지어 사이비 취급까지 받는 동종의학homeopathic medicine을 제도적 차원에서 복권시켜야한다. 서양의학계, 특히 아류 위치에 있는 대한민국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유구하게 전승되어왔으나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한의학계도 크게 각성해야 한다.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낫는 것처럼 고치는 것”이 치료라는 말은 모호하지만 의미심장한 암시를 준다. 크게 하나로 요약하자면, 건강체로서 생명 복원 과정에서 주도권은 스스로 낫는 환자에게 있지 고치는 의자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 정도일 것이다. 의료소비자로 전락하여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없이 뼈아픈 지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