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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평점 :
·······모두가 이어진 하나의 세계·······절대계 안에서, 어떤 종류의 연결이 상실되고 균형이 무너진 상태가 병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요? 질병은 동시에 그런 연결을 소생시키는 하나의 계기, 깨달음도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병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는 셈입니다. 질병: 나쁜 것, 건강: 좋은 것,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병: 나쁜 것, 건강: 좋은 것, 이런 생각은 단순하지도 단편적이지도 않습니다.·······환자가 건강하고 생기 있게 보이고 행복하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구제받는 길을 손에 넣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구제받은 것은 아닙니다.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의무입니다.·······정신론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의사로서 기본을 게을리 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일은 신체에 작용을 가하는 것입니다.·······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인의 영역입니다.(200-202쪽)
질병을 적으로 돌리는 생각, “의사의 일은 신체에 작용을 가하는 것”이라 여기는 생각, 신체와 정신을 떨어뜨리는 생각은 철저히 서구적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로 상징되는 사무라이 정신 전승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양자의 일치가 오늘 날 일본의 분열적 타락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 도대체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이치는 왜 이 지점에서 찰나에 해체되고 마는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 “작용을 가하는 것”은 잘못될 것이 없다. 단, 질병이 단순히 치료 대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전까지만. 질병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메시지는 계기나 과정을 가리키기도 하고 깨달음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비대칭의 대칭이라는 세계진실이 하필 질병을 비켜갈 이유가 있겠는가. 질병이 흔히 가져오는 통증, 불편함 때문에 어두움을 씌운 느낌이 붙었을 뿐.
치료는 의사 소관이고 메시지는 종교인 소관이라는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100% 육체의 질병도 없고 100% 정신의 질병도 없는 진실에서, 질병에 대처하는 전체 과정은 불가피하게 치료하는 일과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을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게 매개한다. 이는 자연농의 경계성betweenness과 이치상 동일하다. 자연농 농투성이 입에서 나온 이 분열의 말이 망발에 가깝게 들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섣부르게 깨달음 운운하는 의사가 가소로운 만큼 깨달음이 종교 영역에 있다는 말은 한심하다. 현실에서 의사가 깨달음의 길까지 안내하는 일이 어렵다는 말과 의사는 몸에 손대는 일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말은 다르다. 몸 치료는 하지 않은 채 깨달음만 운운하는 게 아닌 한 양자의 분리는 이치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기까지 하다. 결국 또 종자논리의 허술함으로 귀착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100% 육체의 질병도 없고 100% 정신의 질병도 없다. 예컨대 우울장애만 해도 정신의 병이라 곡절이 있고 그 역사 자체인 질병이지만 뇌를 포함한 육체 전반에 회로·영역적 근거를 지닌 질병이기도하다. 메시지를 놓쳐도 약을 놓아도 우울장애는 제대로 낫지 않는다. 종자논리에 등한한 채 의학 포르노와 영성 프로모션에 빠진 세상을 구제하기에 가와구치 요시카즈 나무는 자못 위험해 보인다. 가로 그어진 깊은 금 때문이다. 낭창거리기 전에 뚝 부러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