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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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와 의료와 교육이라는 세 개의 길이 동일한 생명 과정의 세 가지 측면이라는 생각·······(186쪽)



농사와 의료와 교육(정확히는 산육)의 공통분모는 “심어 기르고 거두기”다. 이 가운데 의료는 질병 상태를 전제하지만 질병이란 유한성의 한 형태, 또는 발달불균형 상태를 뜻하므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본디 이 세 가지는 인간 누구나 스스로 또는 스스로에 준하는 기본 규모, 이를테면 150인 이내 생명공동체가 행하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스티브 테일러 어법으로는 ‘타락’ 이전, 내 어법으로는 비대칭의 대칭이 이루는 동적 평형이 깨지기 이전 시대에 이들은 삼위일체였다. 이 시대 농사는 자연(원예)농이었다. 이 시대 의료는 자연의료였다. 이 시대 교육은 자연교육이었다. 여기에 따로 정치가 필요했을 리 없다. 에덴에서 시작하여 이로쿼이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이런 고요에서 살았다.


문제는 산업농이다. 문제는 산업의료다. 문제는 산업교육이다. 동적 평형을 넘어 흐른 잉여생산이 욕구를 탐욕으로, 갈무리를 불안으로, 지족을 무지로 튀겨버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탐욕·불안·무지의 극한에서 돈으로 농사·의료·교육 모두를 외주 주어버렸다. 외주는 전문가 집단의 팽창을 전제로 한다. 팽창된 전문가 집단은 포르노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결국 현대문명은 그 자체로 포르노다. 포르노 쌀밥으로 몸을 지탱한다. 포르노 프로작으로 마음을 지탱한다. 포르노 교과서로 사회를 지탱한다.


나는 자연농, 자연의료, 자연교육을 하나로 사는 꿈을 향해 간다. 물론 의자니까 침 들고 환자 앞에부터 서겠지만, 낫 들고 벼 앞에 서든, 책 들고 제자 앞에 서든 뭐가 다르랴. 오늘 여기의 나 너머 진정한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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