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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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아슬아슬한 선을 보여줍니다. 채집에서 재배로 이행하면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른 생명을 죽여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재배와 채집은 같지만, 재배를 통해 어디까지 인간의 것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의 대답이 바로 자연농입니다.(122쪽)·······살기 위해 죽여서 먹는 행위는 아름답고 엄숙한 행위입니다.(125쪽)


아, ‘꼰대’가 되어 가나보다, 하다가도 이내 그 생각을 거둔다. TV 채널마다 먹는 이야기 아니면 도무지 할 말이 없다는 듯 떠들어대는 꼴을 보고서야 어찌 돌아서지 않으랴.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생존의 기본인 먹는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일시적 범람이려니 해둔 세월이 너무 길다. 갈수록 먹을 것에 집착하는 추세다. 배를 채우는 먹기에서 곧 바로 향락적인 먹기로 넘어간 풍경이다.


먹는 행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림과 죽임의 경계를 일으키는 사건이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외길에서 불가피하게 치르는 제의이자 축연이다. 이 비대칭의 대칭이 지닌 뜻을 망각하고 향락으로 빠져버린 오늘의 우리 농업과 식문화는 그 자체로 위중한 질병이다. 포르노다.


포르노는 아름답지 않다. 포르노는 엄숙하지 않다. 아름답고 엄숙한 농업, 아름답고 엄숙한 식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일 때만 성립한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짓고 먹을까, 결정할 때 영양도 맛도 생명을 살리는 균형점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 중용의 밭에서 낸 중용의 음식으로 중용의 식사를 하기 위해 탐욕의 손을 거둬들이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급진적radical이고 근본적radical인 혁명이다.


너무 많이 먹으려 너무 많이 죽인다. 아름답고 엄숙하지 않다. 너무 맛있게 먹으려 너무 잔혹하게 죽인다. 아름답고 엄숙하지 않다. 너무 쉽게 먹으려 너무 무심코 죽인다. 아름답고 엄숙하지 않다. 너무 함부로 먹으려 너무 무례히 죽인다. 아름답고 엄숙하지 않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아슬아슬한 선” 위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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