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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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삶의 시작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농사의 본연, 생활의 본연, 인위의 방식이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재배 생활, 농업 생활 자체가 원래 환경 파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그렇지 않은’ 것이 자연농입니다.(114쪽)


  ·······역사에서는 보통 괭이에서 가래로 발전했다는 식으로 흙을 뒤집는 도구와 함께 농사가 시작되어 진화해왔다고 여깁니다.······자연농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부합하는 올바른 형태”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 1만 년 전, 채집 생활을 기반으로 농업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채집과 농업이 겹치는 시기가 분명히 있었습니다.(120쪽)




‘겹치다’는 말은 인간 언어에서 근원적 위상을 지닌다.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또는 이것만도 아니고 저것만도 아닌 세계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겹치는 시공에서 그려지는 풍경화는 괴괴한 얼치기가 아니다. 변혁의 역동적 과정을 드러낸다.


1만 년 전, 채집의 가장자리에 최소한의 재배가 등장했다. 숲에 밭을 깃들게 하는 손 내밀기 변화였다. 인간이기 위한 최초 혁명이었다. 오늘 산업농의 가장자리에 또 다시 최소한의 재배가 등장한다. 밭에 숲을 모시는, 손 거두기 변화다. 인간이기 위한 최후 혁명이다.


숲과 밭의 차별 없는 일심의 터전에서 채집과 재배가 맞물리는 화쟁의 노동으로 어우러지는 무애자재의 삶을 꿈꾼다. 불가능한 꿈인가? 그래서 꿈꾸지 않는다면 진정한 리얼리스트가 아니다. 체의 목소리가 가 닿는 궁극의 지점은 다름 아닌 ‘숲밭’이다.


모든 혁명의 궁극 목적은 더불어 거룩하고도 흥겹게 먹는 것이다. 거룩하고도 흥겹게 먹는 것이야말로 생명에게 가장 긴급하고도 근원적인 사건이다. 생명 활동의 지성소는 ‘숲밭’이다. ‘숲밭’에서 윤리도 예술도 정치도 교육도 의료도 참되어 나온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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