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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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을 살아가는 동식물의 생명이 죽지 않고 활동을 계속하고, 생물들의 생사의 순환이 흙을 무대로 축적되어 갑니다. 유형과 무형의 생명의 역사가 논밭 위에 쌓여갑니다. 이 역사를 무대로 다음의 생명은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마련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존재합니다.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만큼 많은 생명을 키울 수 있는 풍요로운 무대가 되어 갑니다.·······일반적으로 뭉뚱그려 흙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부패한 “시체의 층”입니다.(108쪽)

  ·······물과 바람이 흘러내려 가면서 바위가 부서지고 돌이 부서지고 모래가 부서져 흙이 되고, 거기에 동식물들의 생사의 순환에서 생겨난 시체가 썩은 흙도 뒤섞여 논밭의 흙이 됩니다. 흙 자체는 생명 활동을 하지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생명 활동의 일환을 담당하고 있고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흙이 없어도 벼나 채소는 자랍니다. 흙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흙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잘못된 인식입니다.·······흙을 풍요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흙은 풍요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흙을 무대로,·······생명이 살아 생사를 되풀이하면, 스스로 시체의 층을 쌓고 생명들을 살리는 풍요로운 무대가 만들어집니다.(109-110쪽)


흙은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지구 표면 물질이다. 가와구치 요시카즈가 흙이라는 말을 엄밀하게 사용하지 않은 점이 있으나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보다 흙을 “생명들을 살리는 풍요로운 무대”로 정확하게 인식한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돋을새김해서 보자.


흙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흙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잘못된 인식입니다.·······흙을 풍요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흙은 풍요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지적은 우리의 유서 깊은 무지를 냉엄하게 베어버린다. 갈고 거름 주는 일 따위로 흙을 풍요롭게 할 수도 없거니와 설혹 그렇다 해도 부질없는 짓일 뿐이라니 실로 무참하다. 무참의 진경은 그러나, 따로 있다. 흙은 다만 생명을 키우는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생명은 흙과 흙 사이, 그 소미한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각각의 생명은 자신의 스케일에 맞게 흙과 흙 사이를 힘껏 넓혀가며 살아가다가 다시 극미한 공간을 남기고 무로 돌아간다.


흙과 더불어 일어나는 생명 사건에는 가와구치 요시카즈조차 무참하게 하는 진경이 또 하나 있다. 식물 대부분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분의 90%를 흙 가장자리가 아닌 대기에서 공급받는다는 사실 말이다. 자연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흙 밭이 아니라 대기 ‘밭’이다. 대기를 왜곡·오염시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연농의 요체다.


농투성이가 원전, 기후 변화, 결국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가능한 고립에 고의를 두는 것은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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