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자연농의 대가와 문화인류학자가 담담하게 나누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명의 길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 지음, 임경택 옮김 / 눌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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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자연농이다.”라는 기본적인 지점을 말씀해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기본은 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논밭의 표면을, 지구의 표면을 결코 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료를 쓰지 않으며, 나아가 풀이나 벌레를 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는 해충과 익충의 구별이 없습니다. 다 까닭이 있어서 존재하는 생명일 뿐 결코 적이 아니며 없어서는 안 될 생명들입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날씨, 토질, 작물의 성질, 그곳의 환경에 맞게 따라가고 맡기는 것입니다.(101-102쪽)


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내게 소로 밭갈이하는 풍경은 잊지 못할 그리운 향수로 남아 있다. 땅을 파 뒤집는 일은 풍년을 기원하는 하나의 제의였다.


두엄을 마련하기 위해 ‘풀 베는’ 일은 농촌 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품앗이 가운데 하나였다. 그날은 얼추 잔칫날 분위기를 자아냈다. 두엄간에 쟁여지는 풀 더미에서 풍겨 나오는 압도적인 식물 향의 기억은 바로 이 순간에도 코끝을 찌르는 듯 생생하다. 이웃 아저씨들이 풀지게를 내려놓으며 손에 쥐어주던 개암 맛의 기억도 새롭다.


열 살 이전의 어설픈 손길이지만 감자밭에서 호미로 김매던 기억 또한 삼삼하다. 내가 김맨 밭의 감자가 유난히 알이 실해 신기하다시던 할머니 음성이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이 이른바 관행농이 빚어낸 에피소드다. 자연농이 내 어릴 적 추억으로 남았다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내면을 채웠을 것이다. 마지막 호미질에서 반백년도 썩 지난 오늘 자연농을 단도직입의 화두로 들면서 고요히 옛 풍경을 애도하려 한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기본은 갈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


다 까닭이 있어서 존재하는 생명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


바로 이 풍경으로 복귀한다. 이 말은 진즉부터 내 의학과 치유의 종자 논리를 이루어왔다. 농農과 마주하여 그 일치함에 살포시 놀라는 것이 딴은 새삼스럽다. 내가 마음병과 마주할 때 근본이며 기본이라 여기는 것은 아픈 사람도 나도 현재 있는 그대로를 해석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파 뒤집지 않는다. 부추기거나 칭찬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에게 고유한 특성과 조건을 살피며 “따라가고 맡기는 것”이 최대한이자 최소한의 일이다. 아픈 사람의 역사, 거기 집적된 희로애락의 지층에 예의를 갖추고서야 그 스스로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 과정에 내가 비로소 참여할 수 있다.


자연농투성이 가와구치 요시카즈는 자연의醫투성이 나의 은유 너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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