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의 마음을 세심하고도 충분히 깊게 살펴보려 애써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적의 슬픔을 헤아릴 줄 알게 된다.(232쪽)

공유하는 고통과 동정심은 각자의 증오를 초월하게 하며 적이 지니는 비밀스러운 신성을 보게 한다(236쪽)


원수, 그러니까 적의 슬픔을 헤아린다, 적이 지니는 비밀스러운 신성을 본다, 할 때 왜 적을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가 묻기 전에 대체 적이 누군가부터 물어야 한다. 검토 없이 이미 상정된 관념상의 적은 사유를 왜곡한다. 나: 좋은 사람, 적: 나쁜 놈, 이렇게 규정하고 사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인 내가 나쁜 놈인 적을 사랑하는 것이 지니는 도덕적 우월성을 깔고 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다시없이 육중한 위선이다.


뒤적거려보자. 나쁜 놈인 내가 좋은 사람인 적을 사랑하는 경우라면 어떤가. 정녕 내가 나쁜 놈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허공에 대고 지르는 소리일 뿐이다. 둘 다 좋은 사람일 경우는 적대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테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전혀 불필요한 말이다. 둘 다 나쁜 놈일 경우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이미 말이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좋다, 나쁘다가 섞인 불순물인 나와 너의 경우다. 마치 허무 개그처럼 들리는 이런 결과에 허무해할 일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선악을 가리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진실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선악 이전, 나의 인식에 가로놓인 너에 대한 무지의 문제다. 더 근원으로 들어가, 나의 무지 너머 절대 신비인 너의 존재 문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통찰 기저에 닿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쓰는 가장 극한의 대척 언어와 사랑이라는 언어를 결합함으로써 사랑은 역설이 된다. 역설의 실천은 칼날 위에 서는 것보다 어렵다. 사랑은 만만하지 않다. 통속기독교가 사랑의 진실 앞에서 일패도지 한 까닭은 사랑을 전유했다는 부박한 자기기만 때문이다. 그 통속기독교의 실패가 지난 세월 대한민국 민주주의 실패를 견인했다. 3월 10일 11시 심판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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