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7일, 제8차 촛불집회에 참석하려고 길을 나설 때부터 몸이 좀 이상했습니다. 미세하게 온몸에 힘이 빠지고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밤부터 질긴 열과 곡괭이질 같은 기침, 그리고 격심한 근육통에 시달리기 시작하여 거의 일주일가량 몸살감기를 호되게 앓고 있습니다.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고 약물을 최소화한 채 단식 위주로 체온을 높여주어 통증과 불편을 품어 안았더니 이제는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내를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은 질병을 대하는 제 방식이 좀 극단적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제 직업을 염두에 두면 더욱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통속한 현대 주류의학이 간취하지 못한 진실에 터하고 있기 때문에 미련해 보일 정도의 결곡함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터한 진실은 지극히 평범한 다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질병은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라는 진실입니다. 통속한 현대 주류의학은 토건·산업적 개입을 지나치게 합니다. 출생 이전부터 사망 이후까지 모든 불편한 현상, 그러니까 증상들을 질병으로 만들고, 그것의 관리를 이른바 전문지식집단인 자신들이 독점함으로써 사람의 일생 전체를 의료지배체제 안에 가둡니다. 무수한 증상억제제의 노예가 된 인류는 점점 더 질병에 무력한 존재로 영락해가고 있습니다. 이 묵시록적 풍경을 걷어버리려면 우리는 질병을 저들만의 장사판에서 건져내 자신의 삶의 일부로 가져와야 합니다.


다음, 고통은 정면으로 마주하고 통과하는 것이라는 진실입니다. 없애거나 피해 가려는 모든 태도는 고통을 바르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의 메시지는 적대시도 도외시도 아닌 직시에서 전해집니다. 자본주의 문명이 구축한 안락의 왕국, 긍정의 이상향은 한낱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고 넘치는 진통제, 도처에 흐르는 기만적 자존감은 도리어 인류를 피폐 상황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이 종말론적 상황을 타개하려면 우리는 질병을 경쾌한 무통의 샹그릴라에서 끌어내려 육중한 통유痛癒의 땅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물론 이 총론을 벗어난 예외적 각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외를 인정하는 것과 그런 예외를 기축으로 삼아 패러다임을 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현대문명의 다른 분야가 그러하듯 의학 또한 자본의 논리에 굴종한 이래 본말이 전도된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의학 스스로 혁파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파국은 그러면 불가피한 일일 것입니다.


스스로 혁파하지 못해 파국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체계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체계의 균열음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떨거지의 저항도 못지않게 맹렬해지고 있습니다. 가소롭다가도 소름이 확 끼치는 판국입니다. 불쑥 간호사 선생이 묻습니다. “그 몸으로 내일 광화문 또 나가세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프다고 안 나가면 죽이러 쳐들어오는 놈들이잖아.” 이 병든 체계, 우리가 품어 안아야 무너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