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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ㅣ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신은 좀 전에 말한 것과 같은 질문을 한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도 이전과 같은 대답을 한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똑같은 대답을 했지만 이제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자 신은 엘리야에게 세상에 내려가 신의 뜻을 펼치라고 말한다.(274쪽)
처음 문답과 나중 문답의 정확한 일치를 성서는 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이 무심한 외적 일치에는 내적 혁명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혁명의 고요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272쪽)인 신의 정체성에 연원을 둡니다. 폭풍우와 지진으로 현현하는 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신의 자기 전복이 침묵이므로 그것이 온전히 인간에게 배어들 때 겉모습은 전복되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침묵으로 전복하는 것은 전복의 전복이기 때문에 무심한 외적 일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전복의 전복에서 오는 외적 일치는 전복의 전복을 다시 스스로 전복하는 출발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전복의 무한 추동이 바로 섬세한 침묵의 소리인 신입니다.
“한 꺼풀 벗겨지지 않는 인간은 교육되지 않는다.”_괴테
인간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교육되어야 합니다. 교육된다는 것은 기존의 오류, 그러니까 부분성이 벗겨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꺼풀이 벗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끝내 아무 것도 벗겨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한 생을 전혀 교육되지 않은 채 유아기 상태로 살다 죽는 사람이 사실은 더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지배자 위치에 오르면 거의 예외 없이 그 권력을 남용합니다. 무지 위에 쟁여진 성공이 더욱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성 피폐는 자기 성찰과 공감 능력 결핍에서 오는 패륜의식 상태를 말합니다. 이 패륜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이비 통치자 하나 때문에 통째로 흔들리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이 밝혀지면서 분노와 슬픔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빙산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니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심지어 53년 전 독재자 아비가 그를 무사히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입시 제도까지 바꾸게 했답니다. 평생을 그런 특혜 속에서 어떤 성찰도 없이 살아와 바야흐로 언어도단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생뚱맞은 표정, 해맑은 미소가 더욱 소름 돋게 합니다. 더 가공할 것은 그를 어르고 조지며 양육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영구 집권의 로드맵을 입력시키고 조종하는 매판자본 카르텔의 실체입니다. 저들은 마름 뒤에 앉아서 1500년 동안 인민의 피를 빨아온 흡혈귀입니다.
200만 시민의 함성은 저들에게 들리지 않으므로 사실상 섬세한 침묵의 소리입니다. 저들은 그 침묵의 소리에서 신을 느끼지 않고 개·돼지를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3번씩이나 담화를 발표하면서 어떻게 일관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까. 질문을 물리친 채 등 돌려 표표히 사라질 수 있습니까. 이제 시민은 더 많이 모입니다. 모일수록 섬세한 침묵이 됩니다. 더욱 내밀하고 그윽한 깨달음으로 스스로 ‘도와주는 우주 기운’이 됩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손수 민주공화국의 틀을 짭니다. 박정희가 총칼로 약탈한 민주주의, 그 딸이 부정선거와 세월호사건으로 탈취한 공화국, 시민은 섬세한 침묵으로 되찾습니다. 폭풍우·지진의 권력집단을 섬세한 침묵으로 처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