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의 과학화 - 자연주의 출산의 거장이 전하는 21세기 사랑의 의미
미셀 오당 지음, 장 재키 옮김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진통 중인 여성이 손과 무릎을 짚고 엎드릴 때가 바로 외부 세계에서 자신을 더 쉽게 고립시킬 수 있는 시점이·······다. 즉 이 자세가 여성의 대뇌신피질의 활동을 줄여서 효과적인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자극을 줄 수 있는 최상의 자세다. 엄마가 손과 무릎에 의지한 자세를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본다면 출산과 기도의 긴밀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151쪽)
·······우리는 공동체와의 유대를 버리고 우리 자신이 되어 프라이버시를 가지고 겸허하게 느껴야 하는 때가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통 행해지는 대뇌신피질의 조절 정도를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대뇌신피질이 완전히 발달하는 시기인 성인기 초기에 가장 절실해진다. 기도란 포유류인 근원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비유하자면 기도는 적어도 몸을 숙이는 것이다. 기도하는 본래의 이유는 아마 세상에 내보이는 우리의 가면을 이따금 벗어버리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156-157쪽)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영적 스승 자리에는 대부분 남성이 앉았습니다. 통속종교나 수행조직에서도 그랬습니다. 이런 사실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이 본디 그런 부분에서 능력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근본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무심코 쓰는 이 영성이나 깨달음, 그 경지란 말의 내용은 대체 무엇일까요?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면 남성가부장적 수행이 ‘각 잡아’ 얻어낸 알량한 각성입니다. 왜 알량하다고 하느냐 하면 열등의식에서 비롯한 유사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열등의식이고 무엇이 유사품일까요? 열등의식은 여성의 출산을 남성이 결코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내는 정신·심리적 질투입니다. 유사품은 실재 출산을 할 수 없어서 만들어내는 함량미달의 사이비 출산입니다. 다시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면 출산을 하지 못해서 보상체계로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영성, 하느님 나라, 득도, 열반, 해탈, 불국정토·······뭐 이런 잡다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의 표현입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립니다. 여성은 영성을 획득하기 위해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하기 위해 어디 들어가 머리 조아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현란하고 다양한 남성가부장적 수행·득도 내러티브를 출산이란 단 하나의 경험으로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출산은 실재the Real 생명을 자신 안에 타자로 품고 있다 내보내는 행위입니다. 둘, 거기에는 극단의 고통과 극단의 환희가 일치·공존합니다. 이것이 지상의 도입니다. 지고의 영성입니다. 췌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본론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그 다음 통찰에 가 닿게 해줍니다. 진실을 전달하는 말글을 남성이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진실의 왜곡이 전승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헤게모니블록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그다지 복잡하거나 심오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출산의 고통을 겪을 때 취하는 자세를 취하면 됩니다. 손과 무릎을 땅에 대는 것입니다. 엎드리는 것입니다. 숙이는 것입니다. 구부리는 것입니다. 꺾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겸허의 실천입니다. 우리의 근원인 포유류로 돌아가는 제의the Ritual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뇌신피질을 무릎 꿇려 무지(!)의 차원, 그러니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된 초월은 인간 이상의 존재로 비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유류의 본향으로 겸허히 내려앉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자는 기도라 했습니다. 우리는 절이라 합니다.
이 전복을 통해 우리, 그러니까 남성가부장적 프레임에 중독돼 있는 ‘남성’ 인간이 가야 할 길이 비로소 생겼습니다. “손과 무릎을 짚고 엎드”려 “포유류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딱 이 하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