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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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 전체가 일종의 ‘대각성’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갑작스런 각성을 가져오는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다. 시기가 결정적인 요인이다.(12쪽)


사실 구제역이 농업의 역사에서 한 전환점으로 남게 된 것은 주로 그것이 발생한 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광우병 시대에 나타났기 때문에 산업농 전체가 즉각적 파기 정책 쪽으로 간 것이 분명해졌다.·······광우병이 새로운 각성의 기초를 놓았고, 구제역이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14쪽)


  광우병이 인류의 건강에,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 생각할 때, 10년 넘는 세월 동안 광우병이 미디어에서 차지한 공간은 적절치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널리 퍼져 있는 불안이 새로운 각성을 위한 조건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갑작스런 각성은 산업영농에 보편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17쪽)


이명박 정권 때 우리사회는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광우병과 구제역 문제를 모두 겪었습니다. 거의 모든 구성원이 실로 엄청난 파장 속에 흔들리며 서 있었습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정부의 협잡과 시민의 저항이 맞부딪치면서 한 동안 이른바 ‘촛불정국’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권력은 토건 식 밀어붙이기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광우병 자체의 과학은 당최 설 자리가 없었고 빨갱이 사주에 따른 괴담으로 치부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사회·경제·심리적 타격을 입은 채 막을 내린 것입니다. 이런저런 사후 평가가 난무했지만 진실은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0-2011년 이 땅을 강타한 구제역 문제는 350만 마리의 ‘살殺처분’(손실액 3조)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또한 구제역 자체의 과학은 당최 설 자리가 없었고 부패한 권력과 안일한 관료의 원칙도 배려도 없는 저인망 식 살해·매장으로 서둘러 덮여져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과 관계자는 물론 언론의 호들갑스런 보도를 접한 일반 시민들까지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사회는 똑같이 반응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구제역 문제 때도 광우병 문제 때도 과학은 주변부에서 권력에 부역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생각깨나 지닌 사람들조차 이 문제들의 기저에 놓인 산업영농 자체를 ‘대각성’은커녕 그 어떤 새로운 각성의 대상으로도 숙고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우선순위에 놓지 못하고 외부에 기대는 식민지 지식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 삼든 않든 산업영농 문제는 이미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절체절명의 화두입니다.


조건이 형성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령 섭씨 영하 0도가 물이 어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조건만 갖추어진다고 해서 물이 어는 것은 아닙니다. g당 80칼로리의 열이 방출되어야만 합니다. 응고열입니다. 물론 반대의 상전이가 일어나려면 g당 80칼로리의 열을 흡수해야 합니다. 융해열입니다. 인간 사회로 말하자면 누군가 주체적인 열정으로 헌신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누군가에서 저와 그대는 예외일까요?


오늘 여기서 나 하나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인류의 건강에,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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