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도교가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심’ 혹은 ‘회의’라는 도마의 신앙을 재발견해야 한다. 니체의 진단대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많은 실수들 중 하나는 의심을 죄로 폄하했다는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나 스스로 생각과 사고의 주체가 될 때 자신만의 새로운 신앙을 시작할 수 있다. <도마복음> 어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고 추구하는 자는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추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이 알고 지내온 것과는 전혀 달라 혼돈에 빠질 것이 다. 그 혼돈의 과정을 통해 그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 놀라운 경이로움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그 발견한 경이로움을 통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배자가 될 것이다.(254쪽)


제자 되고자 찾아온 청년이 헌신을 맹세하자 붓다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뭘 더 바라는가, 청년이 의아해하자 붓다가 답했습니다. “내 말이 과연 그런가, 항상 의심해라.” 훗날 몽산蒙山선사는 “참선자불의언구시위대병參禪者不疑言句是爲大病”이라 다시 정리했습니다.


불교는 의심을 구도의 불가결한 방편으로 삼습니다. 도를 구하는 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부처님 ‘믿으면’ 극락 간다고 여기는 통속한 신도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교리를 2천년 동안 고수해온 기독교가 의심을 신성모독이라 여기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기독교가 자기 성찰이 안 되고 배타와 독선에 가득 차게 된 연유는 이 의심을 통해 바른 삶을 탐색하고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길에서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통속한 욕망이 제국주의 통치 이념과 맞아떨어지면서 일어난 타락 현상입니다. 인간의 타락을 극복하기 위해 일으킨 예수 사건이 그 이름을 전유한 인간들로 말미암아 타락을 향해 가는 ‘현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휘황한 십자가 불빛 아래서 들려오는 저 조용기, 김홍도, 오정현, 김삼환 같은 사람들의 설교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목사 보고 다니는 게 아니라 예수 보고 교회 다닌다는 진부한 거짓말일랑 이제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바로 이 순간 큰 의심 하나 품지 않으면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 삶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맑은 의심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묻습니다.


“너는 나를 보았으면서도 저들을 믿느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