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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ㅣ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성서가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심오한 책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한다. 경전은 한 번도 자신이 인간 삶의 기준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131쪽)·······
예수는 당시 랍비 전통 안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그는 그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내재적인 힘을 키우고 그 힘을 믿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깊이 신뢰하는 것, 이것이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을 정죄한 유일한 인간은 당신뿐입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삶을 찾아 사십시오. 그 길에서 떠나지 마십시오.”(141쪽)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저는 알라딘 서재 <벽효서실>에 『중용416』이라는 이름으로 44편의 『중용』 해석 글을 실었습니다. 그 들머리에 썼던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오늘 여기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록 권위 있는 어떤 시공간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텍스트가 있을지라도 고전은 신성불가침의 경전이어서는 안 됩니다. 경전으로 떠받들리는 찰나 그것은 이미 고전이 아닙니다. 경전이 만들어내는 믿음에는 거짓의 독버섯이 무성합니다. 거짓을 걷어내고 살아 있는 진실을 마주하려면 경전을 가차 없이 베어버려야 합니다. 경전을 베는 마음 고갱이에는 의문이라는 용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문은 내 앞에 놓인 삶의 고통이 빚어낸 눈물입니다. 그 눈물 없이는 당최 고전의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전은 한 번도 자신이 인간 삶의 기준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경전이 살아 있는 ‘인간 삶의 기준’이 되려면 의문을 품는 인간의 주체적 말 걸기가 필수적입니다. 주체적 말 걸기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이 자신의 “내재적인 힘을 키우고 그 힘을 믿는 것”에서 비롯합니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깊이 신뢰하는 것”에 힘입습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는, 그러면 어디서 발원하는 걸까요? 전통에 매몰된 노예적 부품으로서 인간은 결코 자신을 깊이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립된 개인적 명상이나 수행에서 자기 신뢰를 찾으면 안 됩니다. 그런 자기 신뢰는 일종의 환각이며 결국은 중독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기 신뢰는 삶의 한가운데서 흘리는 눈물에서 나옵니다. 눈물은 관계가 빚어내는 통렬한 감각이자 각성입니다. 관계는 고통당하는 이웃, 수탈당하는 자연과 마주하는 경계 사건입니다. 이 경계 사건에서 찰나마다 내재화되는 힘이 생겨납니다. 내재화된 그 힘이 자기 신뢰의 바탕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권력이 정치와 법의 이름으로 시민의 자기 신뢰를 거세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개발독재 논리에 사로잡힌 맹목 집단은 거기 부화뇌동해 의롭고 약한 이웃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여 돌팔매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가족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 어르신들도 밀양 할머니들도 강정마을 주민도 저들의 정죄놀이에 끝없이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숭고하게도 이 선한 이웃들은 스스로 정죄하지 않으니 감사하고도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예수의 이 마지막 말은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그 길에서 떠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