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ㅣ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예수는 시몬에게 “해변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 깊은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고기를 잡기 위해 당신의 그물을 내리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 대한 한글 성서 번역은 보통 “너는 깊은 데로 나가거라. 너희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이다. 이는 성서 원문의 뜻을 전혀 살리지 못한 번역이다.·······그리스어 원문은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이다. ‘돌아오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에파나고επαναγω’는 원래 ‘(해변으로부터 떨어져) 먼 곳으로 진출하다’라는 뜻도 함께 지닌다. 그러므로 그리스어 원문은 “(해변으로부터 떨어져) 애써 나와 깊은 곳으로 진입해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예수는 이 명령을 분명 자신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말했기 때문에,·······아람어로 재구성하면 ‘어바르ebar'가 될 것이다.·······이 단어의 의미는 ’제한 구역을 넘어서다/(법, 관습을) 어기다‘라는 심층의 의미를 내포한다. 예수는 시몬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따분한 일상에서 애써 탈출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에파나고’에 숨겨진 핵심 의미는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과감히 떠나는 일, 단절하는 행위다.(62-63쪽)
제 인생에서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과감히 떠나는 일, 단절하는 행위”는 크게 두 번 있었습니다. 법관이 되는 길에서 과감히 떠나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 하나입니다.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도가 아닌 가족, 친지 입장에서 보면 미친 짓이 틀림없습니다. 성직자가 되는 길에서 과감히 떠나 (한)의학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 둘입니다.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성직을 신의 부르심이라 여기는 선배 성직자, 동료 신학도 입장에서 보면 미친 짓이 틀림없습니다.
“단절하는 행위” 자체도 어려웠지만 새로운 삶으로 바꾸어 나아가는 기나긴 과정은 어렵고 또 어려웠습니다. 누구 말따나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할 길이었습니다. “제한 구역을 넘어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법, 관습을) 어기”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 도상에 있습니다.
“애써 탈출”하는 것은 지난 삶을 모두 없던 일로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아적·고립적 에고를 베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법학에서 의로움을, 신학에서 드넓음을, 의학에서 홀가분함을 벼려내어 통짜로 트인 삶을 이루는 통섭通攝consilience이 남아 있는 제 길입니다. 그 순간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아니 이미 들이닥쳤는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채 찰나마다 곳곳에서 발맘발맘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성서 원문이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뜻을 지녔다는 사실에서 무엇보다 장엄의 울림을 받습니다. “다시 돌아오라”라는 것은 깊은 곳이 본디 인간다운 삶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다운 삶이란 자기 불안·탐욕·무지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사는 경계를 넘어 낯선 이웃과 자연이라는 심연을 향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저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전혀 새로운 제3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거룩한 본성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내재된 신성의 DNA를 복구하는 것입니다. 영겁 이전부터 있었던 불성을 깨우는 것입니다. 인간이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숭고한 틈, 엶, 깸을 행할 수 있는 것은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장엄의 음성에 영혼을 내맡기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가운데 숭고의 귀를 열고 장엄의 음성을 들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깊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