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와 속도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 가운데 하나가 손 글씨입니다. 손 글씨와 자판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만드는 문자는 서로 전혀 다릅니다. 자판 문자는 그 내용이 어떻게 다르든 똑같은 손가락 동작의 행렬로 조합됩니다. 동일한 손동작의 반복은 인간의 행위라기보다 기계 작용에 가깝습니다. 누가 써도 똑같습니다. 인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손 글씨는 다른 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다른 모양을 그려 구성합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쓴 사람의 실제 행위가 새겨집니다. 누가 써도 다 다릅니다. 인간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저 또한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손가락을 두드려 수많은 글을 씁니다. 그러다 문득 손 글씨로 돌아갑니다. 손이 굳어 있다는 사실을 대뜸 느낍니다. 글씨 모양을 그릴 때 낯설어한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차립니다. 결국 글씨 모양 전체가 아름다움을 잃습니다.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면 그 굳음과 낯섦이 더욱 선명해져 아름다움은 말하기조차 민망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 글씨를 가만 들여다봅니다. 문명이 내 인간과 그 미학을 이렇게 구겨버렸구나 탄식합니다. 손 글씨를 잊지 말아야겠구나 다짐합니다. 조그매서 커다란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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