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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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다.(48쪽)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머뭇거림은·······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다.(49쪽)


마음병 상담 오는 아픈 사람 본인은 물론 그 가까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것은 ‘지금 뭘 해야 합니까?’입니다. 제 대답은 기본적으로 이렇습니다. ‘지금은 뭘 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뭘 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그들의 바로 그 질문에 드리워진 질병의 내러티브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뭘 그렇게 한 결과 병에 걸렸음에도 자꾸 뭘 (더)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가능하면 빨리, 가능하면 기존의 논리를 통해 병 이전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욕망의 표현입니다. 이 욕망의 작동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으려고,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정적 계기”를 정색하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이치상 그 자체로 능동적인 내용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이나 그 가까운 사람들이 여태까지 해온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아픈 사람이 처해 있는 현실을 해석·평가·전망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잘못된 상식 또는 어설픈 인문적 지식을 동원해 오해하며, 윤리적·인격적 흠결 문제로 몰아 비난하며,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대체 고쳐지기나 하겠느냐며 절망하는 일, 그 관성 앞에 일단 무조건 멈칫하고 서야 합니다. 멈칫하는 찰나 한 생각 돌이키는 틈이 생깁니다. 틈은 시간을 발효시키고 공간을 주름지게 합니다. 발효는 우연을 치밀하게 파고들고 주름은 전체성을 풍요롭게 드러냅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소비 향락을 재빨리 흡입하는 것이 성공과 행복의 지표인 시대에서 머뭇거림은 다만 강박스펙트럼의 한 가지일 따름입니다. 치료라는 이름의 교정 대상일 뿐입니다. 이렇게 시대정신은 자신의 병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자신의 몰락을 대박으로 규정합니다. 자신의 탈진을 헌신으로 미화합니다. 도착적이거나 분열적인 시대정신의 커튼 뒤에서 정작 고요히 머무르는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천국을 누리는 순수 천사들이 있습니다.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 병과 몰락과 탈진의 절대다수 목숨 값을 향유하는 극소수 존엄이 있습니다. 이들의 과두정이 민주주의를 미끼로 인류의 파멸을 낚고 있습니다.


혁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으므로. 다만, 머뭇거리라고 말합니다. 혁명의 시대가 지나간 시대의 새로운 혁명이므로. 루저의 잠시 머뭇거림이 위너의 고요한 머무름에 금을 내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위너의 수탈은 루저의 “즉각 반응”에 힘입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저가 즉각 성과를 내지 못하고 멈칫거리면 위너의 수탈은 지체됩니다. 위너의 수탈이 지체되는 틈에서 루저의 각성이 촉진됩니다. 루저의 각성은 머뭇거림이 병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동질적 긍정성이 가짜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자발적 머무름의 주체를 뒤바꿉니다. 머무름의 주체를 뒤바꾸는 것이 혁명입니다. 참 진짜 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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