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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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은 우리의 숙명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덤인 만큼이나 우리의 자궁입니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서 우울증은 명징한 울림이 됩니다. 그것은 어둠과 어둠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별입니다. 그것은 장엄한 빛의 커튼을 단도직입으로 찢고 엄습해 들어오는 어둠입니다. 100% 순도의 생명을 찰나에 망치는 죽음의 불순물입니다. 100% 순도의 죽음을 찰나에 깨뜨리는 생명의 순물질입니다. 이 도저한 역설을 알아차리고 삶의 물길로 터 내는 사람, 바로 그가 참사람입니다. 붓다이며 예수입니다. 아, 그런데 실은 그가 놀랍게도 다름 아닌 여성입니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이 21세기 시공간에서 우리가 구태여 우울증을 말하고 여성을 말하는 까닭은 태고의 음성이었으나 오래토록 잊고 삶으로써 멸절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4대강이 죽어가듯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4대강을 살려야 국토가 살듯이 아이들을 살려야 우리 미래가 삽니다. 우리 미래인 아이들은 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어머니, 그 가없는 여성성을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렇게 숭고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죽음이 바로 코앞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절대 우울 한가운데서 어머니, 저 생명의 근원인 여성은 생사를 꿰뚫는, 그러나 뜻밖에도 평범하고 또 평범한 일상을 지속합니다. 이 간절함, 이 사무침, 그래서 오히려 소꿉놀이 같은 도저한 생명 감각.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309-311쪽)


어머니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제대로 된 데서 치료를 받아야지, 동네 한의원에서 무슨·······, **대학병원으로 옮겨라. 어머니는 자신의 세계와 딸의 세계를 미분화 (단)일체 상태로 놓아둔 채 4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딸은 단순 소비자였을 뿐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딸이 주체 선언을 하자 어머니는 그 부정否定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그 부정을 다시 부정하게 하려고 ‘제대로 된 데’를 지목한 것입니다. 딸은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不定이라는 사실. 부정不定이 생명이라는 사실. 생명은 여성에게서 나온다는 사실. 여성을 복원하기 위해 딸은 혁명 중에 있습니다. 혁명을 통해 딸은 비로소 여성이 됩니다. 여성은 ‘어머니’가 됩니다. ‘어머니’가 딸을 해방할 것입니다. 딸은 그의 딸을 해방할 것입니다.


딸은 활짝 웃으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상담실을 떠났습니다. 딸의 뒷모습에 겹치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시 한 조각이 떠올랐습니다.


  恩

  그이는 지금 잠들었을까 폐지 수레 끌고 건널목에 서 있던 노란 가방을 멘 소년이 건널목을 뛰다 넘어지는 순간 믿을 수 없이 빠르게 소년을 일으켜 안던 안녕을 확인하자 이내 굼뜬 노파로 돌아가 소년에게 천천히 밤빛 양갱을 건네던 노쇠하고 남루한 그 손앞에 주춤거리던 소년은

  뒤늦게 달려온 아이 엄마가 노파의 손을 쳐내며 아이를 안을 때 울음을 터뜨린 소년에겐 말하기 어려운 어떤 미안함이 있는 듯했고 소년에게 답하듯 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름 가득한 손을 아래위로 끄덕이며 괜찮다 네가 괜찮으니 나는 괜찮다 깨끗한 아이에게 더러운 노파가 건네려던 밤빛 양갱 같은

  밤의 빛

  이름 붙이기 어려운 연약한 고귀함이 밤의 빛 속에 떠 있다


_<om의 녹턴> 일부(김선우 『녹턴』에서)



졸저 『안녕, 우울증』에 자성과 보결의 의미를 담아 75편의 리뷰를 적었습니다. 넉 달 보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우리사회의 어떤 겉모습은 바뀌었다 하겠지만 핵심 실재는 요지부동인 채로입니다. 세월호사건 진실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공동체성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어둠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는 생명 앞에서 펼쳐지는 도저한 부정不定의 모성을 황급히 소환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밤의 빛 속에 떠 있는’ ‘연약한 고귀함’이 더없이 그립습니다. ‘남루한 그 손앞에’ ‘깨끗한 아이’의 운명이 놓여 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아이 엄마’의 쳐내는 손은 공동체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는 분열의 흉기입니다. ‘네가 괜찮으니 나는 괜찮다’는 ‘더러운 노파’가 깊은 우울증에 잠긴 우리의 구원입니다. 어머니입니다. _()_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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