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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하나의 문명을 떠받치는 뼈대는 세 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식량공급체계, 상하수도체계가 그 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보건의료체계입니다. 그렇다면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문명은 이런 요건, 특히 보건의료 부분의 요건을 만족시켜 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역사를 통해 이식된 서구식 보건의료체계의 핵심 주체 대다수와 일부 국민들은 한의학을 의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의학을 부정하는 그 분들은 ‘양’의사를 의사라고 부릅니다. 그 명칭은 서양의학이 보편의학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보편의학은 없습니다. 서양의학은 ‘어떤’ 의학일 따름입니다. 양약은 ‘어떤’ 약일 따름입니다. 그 분들의 확신은 서구 문명의 홀로 주체적 독선에 귀의한 데서 비롯하였습니다. 다른 문화권의 역사를 인류학이라 이름 한 것과 맥락이 같습니다. 그런 인지 도식에서 나온 이름이 보완, 대체의학입니다. 생각하면 참으로 오만한 표현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들이 주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인류학의 대상인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문명을 부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논리대로 따지자면 서양의학이 한의학의 보완, 대체의학인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전도된 식민지적 의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상-하, 주류-비주류, 심지어 참-거짓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국민보건의료체계 자체는 물론 시장 점유, 의료인 처우, 소비자 의식 등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이 자학 현상은 우울증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울증 치료 하면 신경정신과 양의사와 프로작을 떠올립니다. 한의사와 사역산四逆散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거의,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울증 환우들이 실제로 신경정신과에 가서 어떻게 심리상담 치료를 받는지, 항우울제가 어떤 진단 과정을 거쳐 처방되는지, 그 약이 효과가 없으면 어떤 의학 논리로 전방되는지, 얼마나 많은 환우들이 병의원과 상담소를 떠돌며 헤매는지 안다면 상황은 어떤 식으로든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255-256쪽)
독립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해주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상태를 유지 온존시키는 제이차세계대전 이후 제국의 식민지주의 전략을 신식민지주의neocolonialism라 합니다. 이런 전략이 노리는 것은 자기착취의 위장된 본질입니다. 자기착취는 다시 자발성의 위장된 본질을 지닙니다. 신식민지주의 중첩적 질곡 아래 허우적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신식민지주의가 만들어낸 세계체계의 부조리 현상에 질병과 의학이 예외일 리 없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자발적으로 자기 생명과 존엄을 부정하는 마음의 질병입니다. 물론 이 자기부정의 배후에는 결백한 어머니,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이 앉아 있습니다. 저들은 본디오 빌라도처럼 맑은 물에 두 손을 씻었습니다.
이 잔혹한 풍경에 제국의 은총이 구원으로 등장합니다. 은총의 옥함 속에는 프로작과 토건 치료(정신분석, 인지행동치료 등), 그리고 폐쇄병동이 들어 있습니다. 자비가 더 너른 오지랖을 펼치면 그 마름들이 들고 나타나는 ‘인문치료’나 ‘즉문즉설’에도 대박의 기회가 열립니다. 가해자가 가호의 옷을 입고서 피해자의 마지막 피톨까지 착취해가는 형국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우울증을 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일이 그러므로 치료의 큰 시작입니다. 자발적 자기착취 체제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 없이 치료에 임하는 것은 신식민지주의 부역 행위입니다. 범죄 지식을 의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범죄 행동을 의료라 할 수 없습니다. 이 허위와 탐욕을 놓지 않아서 ‘선생님’ 대우를 받는 자들에게 화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