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1장 본문입니다.


子曰 索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 君子遵道而行 半途而廢 吾弗能已矣.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

자왈 색은행괴 후세유술언 오불위지의. 군자준도이행 반서이폐 오불능이의. 군자의호중용 둔세불현지이불회 유성자능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벽한 것을 찾고 괴이한 것을 행하는 일은 후세에 칭술함이 있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군자가 길을 따라서 가다가 길을 반쯤 가서 그만두기도 하지만 나는 그만둘 수 없다.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므로 숨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아니하여도 후회하지 아니하니 오직 성인만이 할 수 있다.”


2. 은벽한 것을 찾고 괴이한 것을 행하는 일은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 ‘특별히’ 하는 행동입니다. 나아가 그런 행동들로 점철된 삶의 흐름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권력과 부와 명예가 결합하겠지요. 이런 풍조를 일컬어 ‘뜬 사람 문화celebrity culture’라 합니다.


무슨 수를 쓰든 일단 ‘뜨면’ 만사형통인 세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처음엔 연예계에서나 일어나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든 ‘떠야’ 행세하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너나없이 자신을 띄우는 이미지 전시에 골몰합니다.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내용의 괴리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그래야 마땅한, 그래서 더욱 조장되고 있습니다. ‘뜬’ 사람들이 하는 일은 사소한 것도 업적으로 부풀려지고 큰 허물조차 서둘러 덮여집니다.


이 시대정신은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합니다. 무슨 짓으로든 일단 ‘뜨면’ 단박에 인간적인 품위까지 격상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으니 거기에 어찌 사회적 힘이 붙지 않겠습니까? 어떤 젊은 연예인이, 자신이 귀족이라는 의미를 전제하고, 비연예인인 사람들을 ‘평민’이라 했다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게 “드러나 세상에 알려진” ‘특별한’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은 “은벽하고 괴이한” 생각입니다. ‘특별한’ 전시성을 지닌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뜰’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뜬’ 사람이 ‘뜨지’ 못한 사람보다 격이 높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재주가 덕을 제압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형벌입니다.


3. 군자의 한결같은 중용 실천은 맥락의 변화를 유연하게 살피면서 다함없이 이어집니다. 중용의 길을 따라가다가 반쯤에서 그만두는 것은 군자가 행할 바 아닙니다. 아무리 해봐도 ‘뜨지’ 않자 중용 실천을 그만두는 자는 사이비 군자입니다.


어차피 중용의 도는 ‘특별한’ 프로세스를 구사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아니 당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소통을 통한 평범함의 추구가 중용의 도라면 정작 세상에 알려지는 주체는 대동으로 바뀌는 사회 자신일 것입니다. 군자는 자신을 숨겨 대동 세상 자체를 드러내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앞 다투어 ‘세상에 알려지는 특별함’을 향해 내달리는 시대를 살면서 아무리 달려도 그 ‘특별함’에 이르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사람이 참 주인인 세상을 꿈꾸며 군자는 표표히 무대 뒤로 몸을 숨깁니다. 그 결단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인입니다.


4. 광대무변한 우주 한 모퉁이 티끌 같은 존재라면 하찮지만 그것이 생명인 한 위대합니다. 위대한 생명은 그 자체로 이미 ‘뜬’ 기적입니다. 여기에 기획 전시를 더해 ‘띄우는’ 것은 탐욕이며 수탈입니다. 탐욕과 수탈을 정체성으로 삼은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이른바 스타무의식을 지니지 않고 살기란 여간해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적으로 태어나 꼭 한 생을 살다 가는 것인데 기왕이면 ‘떠서’ 권력·부·명예를 누리면 좋겠다, 싶지 않은 사람 그 누구이겠습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꿈들은 사는 동안 그저 그렇게 일어났다가 그저 그렇게 스러집니다. 문제는 이미 ‘대박 난’ 사람들과 그 기득권의 보전·강화입니다. 체계와 규모의 이익을 누리면서 끝없이 덩치를 키워가는 것이 세습자본이라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권력과 종교를 거느리고 탐욕과 수탈을 부추겨 난공불락의 성채를 쌓고 있습니다.


세습자본의 이런 토건 가운데 그 추악함과 잔혹함에서 단연 빼어난 것이 대한민국 지배세력의 매판토건입니다. 나라를 팔고 백성을 파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백성을 대량학살하기까지 합니다. 절묘한 기획과 연출로 산 사람들의 혼을 빼, 죽은 사람들에 대한 도리조차 다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조문을 ‘띄우고’ 눈물을 ‘띄워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를 거듭 거듭 바다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백성을 ‘빠뜨려’ 정권을 ‘띄우는’ 이 무도한 국가에서 중용은 과연 무엇이고, 군자는 과연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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