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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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은 영어처럼 관계대명사 같은 것을 써서 복합 문장을 길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면 길이가 늘어난다기보다는 뚱뚱해진다는 느낌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특징은 우리말이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분위기가 아닌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줍니다.

  그리고 가치가 다른 자음이나 모음을 교체함으로써 다른 느낌이 나게 하는 음상音相 또한 우리말의 그런 특징을 잘 나타내줍니다. ‘졸졸’과 ‘쫄쫄’, ‘줄줄’의 미묘한 차이를 다른 언어 사용자가 간파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나아가 ‘짜릿하다’와 ‘쩌릿하다’처럼 심지어 반대에 가까운 느낌까지 나타나면 절묘함은 극치에 다다릅니다.

  이렇게 우리말이 지니는 직관과 감성 우위적인 분위기는 우리의 현실 삶의 양식과 직결된 것입니다. 한과 흥이 어우러진 정념이 시공을 꿰뚫는 우리의 공통된 생활 정조입니다. 중국인의 눈에 비친 저 옛날 ‘음주와 가무’의 상징이 오늘날에도 엄청난 소주 소비와 불야성을 이루는 노래방 문화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관과 감성을 통한 난장亂場 식 소통에 능한 우리에게 서구적인 논리, 분석, 그리고 지성으로 접근하는 주지주의 상담 방식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성과 이성에 터 잡은 의지적 행위를 앞세워 ‘다그치는’ 분위기는 누가 뭐래도 낯섭니다. 우리는 정념을 정념으로 결 잡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려야 그야말로 생태적 상담치료가 가능합니다.(193-194쪽)


흔히 사람들은, 심지어 의사조차도 마음의 병 앓는 이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야단칩니다. 아픈 이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으므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마음의 병 앓는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빠져드는 반추rumination 사고는 주체가 특정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사고가 아닙니다. 어두운 감정과 그 느낌을 소환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기계적·자동적 촉매 반응입니다. 실제로는 사고 아닌 감정의 점화 작용입니다. 이를 사고 작용이라고 전제하고 대뜸 이성적·논리적으로 교정하려 드는 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는 그대로 정서적 지지부터 보내는 것이 치유의 첫 걸음입니다. 정서적 지지는 감정이나 느낌 차원의 인정, 그러니까 공감empathy입니다. 공감을 전제로 이성은 성찰의 이성이 됩니다. 성찰의 이성으로 화쟁을 빚어갑니다. 화쟁의 훈습으로 성찰은 이성을 발효시킵니다. 발효된 이성은 전체로서 진실, 그 비대칭의 대칭성을 증득합니다. 비대칭의 대칭성을 증득한 이성은 스스로를 깨뜨리고 넘어갑니다. 그 너머는 또 다시 감성의 대지가 펼쳐집니다. 그 광활한 감성으로 걸림 없이無碍 매이지 않고不羈 살아가는 길에 아픈 사람이 발 디디면 치유는 삼가 스스로 물러납니다. 이것이 치유의 일생이자 그 수사학입니다.


스스로 생각이 지나치게 번다하고, 방대하며, 광범위하다고 자책하는 사람에게 조분조분 물어보면 실제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버전만 바꾼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번다하거나 방대하다고 여깁니다.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허황한 생각을 하면서 광범위하다고 여깁니다. 나름대로 방어를 하거나 증상을 악화시키는 병리 반응이어서 파편 형태로 출몰하므로 상호관계 규명이나 체계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관념의 공시성과 실천의 통시성을 유기적으로 고려하지 못하므로 휴먼스킬을 확보하지 못하고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이럴 때도 치유는 아픈 사람이 겪고 있는 상황을 십분 공감하면서 곁을 지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서서 정리해 가르치고 야단치면서 지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답을 제시하려 덤비지 말고 반드시 진솔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아픈 사람한테 질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신뢰를 표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 스스로 결을 감지하고 손끝으로 휴먼스킬을 더듬어갈 때 치유는 삼가 스스로 물러납니다. 이것이 치유의 품이자 그 예학입니다.


“We think too much and feel too little.” 찰리 채플린의 말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고치려고 섣불리 덤비는 사람입니다. 이성적 생각보다 함께하는 느낌이 고수의 치유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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