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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말도 인연이고, 같은 말을 쓰는 공동체도 인연입니다. 인연은 시공을 따라 흐릅니다. 한때 단단했던 공동체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는 하지요. 만주족이 대표적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말 공동체는 매우 길고 험한 역사를 헤치며 살아남았습니다. 한자, 일본어가 차례로 이 공동체를 지배했고, 지금은 영어가 점령하고 있지만, 우리말은 엄청난 위협과 천대에도 굴하지 않고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인연을 가꾸어 가는 우리의 고단한 삶에서 슬픔, 불안, 두려움, 절망, 우울의 어둠이 생겨났다면 그 마음을 담아내는 우리말로 보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말은 우리말인데 담긴 내용이 서구의 것이라면 소화 안 되는 음식을 먹는 일과 다를 바 없겠지요. 물론 인간이기에 지니는 보편 정서가 있기는 하겠지만 버터에 빵을 먹는 것과 김치에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서구인과 우리는 다른 마음결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상담을 통한 마음 치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말의 얼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201쪽)
과거 아주 오랜 세월 중국어에 침해를 받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리말이 사라지고 한자말로 대체되었습니다. 나아가 우리말은 한자말과 수직관계의 하위에 놓이면서 의미가 억제되었습니다. 일제에게 국권을 잃었던 35년 동안에는 일본어의 침탈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라고 주장하는 식민주의 학자들의 조작으로 수많은 우리말이 한자어로 둔갑했습니다. 국권 회복 이후에는 영어에 제압당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급기야 온 나라가 영어 몰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앞날은 심히 어둡습니다. 여기서 누가 어떤 노력과 희생을 통해 세상 이치에 맞는 흐름으로 되돌려 놓을지 모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대 과제라는 사실 만큼은 변해서는 안 됩니다. 절망과 결기가 교차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말에 담긴 느낌과 생각, 그리고 삶의 자세를 토대로 소통함으로써 마음의 고통을 풀어나가려는 제 소망이 너무 때늦은 뒷북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238-239쪽)
『문학동네』 2016 봄 호에 황현산 선생과 신형철, 문강형준의 대담이 실렸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변방의식’에 관한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기의 사유와 경험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현장을 ‘첨단’으로 여기지 않는 우리의 자기소외 행태를 지적한 것입니다(533-536쪽).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변방의식’을 조금 더 세밀하게 문제 삼아보겠습니다. ‘변방’이란 표현은 공시적synchronic인 것입니다. ‘첨단’이란 표현은 통시적diachronic인 것입니다. 엄밀히 보면 서로 어긋난 표현입니다. ‘변방의식’은 자신을 선순위에 두지 않는 ‘후순위의식’이라 표현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건강한 자기의식은 ‘선순위의식’입니다. ‘선순위의식’은 자기 현장을 첨단으로 여깁니다.
‘변방의식’ 아닌 변방의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문제가 되는 것은 중심의식입니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사유와 경험은 자타 분열의 결과를 낳습니다. 공존을 꾀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변방에 두되 자기를 선순위에 놓아야 자타가 공존하는 세상을 건설해 나아갑니다. (2015년 9월 25일에 제가 쓴 『심리정치』 리뷰18-<오직 바보>를 참고하십시오.)
변혁은 변방에서 일어납니다. 변방에서 자기 선순위의식을 지니고 사유와 경험을 빚어가는 사람이 변혁의 주체입니다. 사유와 경험은 결국 언어의 문제입니다. 이 땅의 자기소외는 결국 언어소외입니다. 모국어를 후순위에 두는 피학증입니다. 한글 전용 따위의 중심의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타자의 사유를 표준으로 삼아 선두에 세운 뒤, 거기에 자신의 사유를 뒤따르게 하고는 보편의 맥락을 획득한 양 하는 매판 분자의 가소로운 허위의식이 사라져야 하는 일입니다. 이 끄달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똑똑 바보가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류이며 상류입니다. 우리사회의 주류이며 상류인 자들이 낭자하게 뿌려놓은 매판의 언어에서 모국어를 해방하는 일이 우리 공동체의 근본 변혁입니다.
모국어를 해방하는 일은 언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언어를 살아가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모국어로 매판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유하고 그렇게 치유된 사람이 건강한 모국어적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 일은 그러므로 인문의 의학이며 의학의 인문입니다. 의학도인 저는 인문의 지평으로 나아갑니다. 거기 인문학도 그 누가 의학의 지평으로 나아오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