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 하나를 더 말씀드리면 우리가 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수천 만 명이 복용하고 있는 항우울제가 과연 치료제냐 하는 근본 질문입니다. 앞선 모든 의문을 덮고 그 약의 존재 이유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떤 차원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면 항우울제는 근본 치료제가 아닙니다. 증상 완화제입니다. 증상 완화가 치료가 아닌 이유는 유사 자극에도 증상이 즉각 다시 점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약을 처방하고 손을 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173-174쪽)


30년 다 된 기억 하나를 떠올립니다. 혼자 살고 있는 가리봉 벌방에 날마다 제자들이 와 먹고 자고 하던 시절, 느릿느릿하지만 나이에 비해 음식 솜씨가 좋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누구의 생일이었는지 맛난 음식을 준비하느라 식재료들을 사서 냉장고에 넣는 중이었습니다. 혼자 사는 터라 냉장고가 마치 장난감처럼 작았습니다. 차곡차곡 집어넣다가 여의치 않자 마지막 순간 그 아이가 무심코 택한 방식이 기발했습니다. 냉장고 문을 살짝만 연 뒤 마지막 물건을 대강 억지로 밀어 넣은 다음 그것이 채 떨어지기 전에 잽싸게 냉장고 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태연히 두세 번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손으로 가리키며 갑자기 웃기 시작했습니다. 웃음은 순식간에 번져갔습니다. 한 동안 우리 모두가 배를 움켜잡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어댔습니다.


현대 서구의학은, 특정 외과 수술 포함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이 아이의 냉장고 문 닫기와 같습니다. 문제의 근원에 유장하게 개입하지 않습니다. 드러나는 증상을 기민하게 억제한 다음, 그 효과를 기계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아픈 사람을 약물에 종속시킵니다. 거의 모든 질병에 전천후로 뿌려지는 소염·진통·해열·항생제가 그 웅변적 증거입니다. 증상 자체를 질병으로, 그것의 제압을 의학으로 여기는 관점의 소산입니다. 증상의 대부분은 그 자체로 질병이라기보다 질병을 알리는 신호거나, 자체적 방어 또는 치유 반응입니다. 그것을 억압 또는 제거하는 일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표면적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을 통해 질병이 형성되는 이면적 과정을 읽어내야 합니다. 과정을 살핀다는 것은 질병의 서사에 귀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서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질병의 전체성으로 육박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질병의 전체성을 외면한 그 어떤 의학도 오류입니다.


증상 억제제인 약물은 질병의 서사를 틀어막는 도구입니다. 치료의 미명으로 아픈 사람을 진실에서 격리시키는 수단입니다. 현대 서구의학의 이런 폭력성은 현대 서구문명의 가감 없는 한 단면입니다. 그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준)주변부에 속하는 대한민국 상황은 중첩적으로 부조리합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이 나라 집권세력이 오히려 더 증상 억제적 약물 방식으로 통치합니다. 정치적 불의를 덮기 위해 아이들 250명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면서 극한의 우울과 분노에 시달리는 유족에게 보상금 던져주고 ‘시체 팔이’ 딱지를 붙여 고립시키는 세월호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늘, 2016년 4월 11일, 725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제 황현산 선생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우리의 현주소를 말해줍니다. “서울 한복판에 어느 국회의원 후보가 ‘종북, 동성애, 세월호 척결’이라고 현수막을 내걸어 놓은 것을 보고 이제 대한민국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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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0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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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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