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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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여성의 25%는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부인하는 경우를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 이상 높습니다. 어떤 실험에 따르면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때 감정뇌(대뇌변연계) 전면의 활동성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8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성이 이렇게 우울증에 민감한 것은 무엇보다도·······월경-임신-출산-육아-완경·······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분비 변화의 복잡성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월경, 임신, 출산, 육아, 완경은 각각 그 자체로 외상trauma입니다. 이들이 몸과 마음에 일으키는 고통이야말로 우울증의·······확실한 진원지입니다. 남성에게는 없는 이런 외상을·······안고 다른 생명과 삶에 관계를 맺어야만 하기 때문에 여성이 우울증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145쪽)


한동안 남녀의 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가 유행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남녀의 뇌는 차이가 전혀 없다고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일리一理가 있으니 모두 옳습니다[皆是]. 둘 다 무리無理가 있으니 모두 그릅니다[皆非]. 인간이 인간인 만큼에서 남녀는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인간이라도 엄연히 남녀의 비대칭적 대칭이 있는 만큼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결과 겹은 천차만별입니다. 진실의 전체 담론은 어느 특정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분포적인 소밀, 그러니까 가우스곡선을 그려낼 것입니다. 문제는 남녀의 같고 다름을 하필 뇌만 가지고 논한다는 데 있습니다. 몸 전체와 그 몸이 생리적, 사회정치적 조건과 작용하는 사건인 마음 풍경을 모두 고려한 담론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극단적 이야기를 기획해내는 자들의 의도입니다. 다르다면 다르다고 한 대로, 같다면 같다고 한 대로 자본의 논리를 좇아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토건 의지를 저들은 언제나 교묘히 숨깁니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을 수탈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른 점을 신비화해서 매혹시키느냐, 같은 점 때문에 남성가부장의 변방에 놓느냐, 그 차이 뿐입니다. 물론 전통 주류의학에서는 후자의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신비화를 경계하면서 성차를 분명하게 인지한 새로운 의학의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한국성인지의학회가 창립되고 2010년 이화의료원이 성인지의학협진클리닉을 개설하였지만 아직 그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포함한 마음병에서 성차 문제는 특히 중요합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른 몸으로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며 그것이 어떤 다른 마음 풍경을 빚는지, 잘고도 크게 그려낼 의학 담론이 긴절합니다. 주류의학 구조에서 산부인과의학이 정신의학을 결합하여 독자적 의학 담론을 만들거나, 거꾸로 정신의학이 산부인과의학을 결합하여 독자적 의학 담론을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의학의 지평선을 열어야 합니다. 산부인과의학이라는 말 자체가 폭로하듯 지금의 주류의학은 남성의학을 보편의학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를 깨뜨리려면 전략적으로 ‘통합여성의학’이라는 용어를 쓸 필요도 있습니다. 남성의학의 하부단위가 아님과 동시에 여성의 심신을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안녕, 우울증』은 146-151쪽에 걸쳐 월경, 임신, 출산, 육아, 완경에 관한 이야기를 비교적 소상히 다루었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이 부분을 읽고 미화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공감합니다.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통속한 담론이 진실을 접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만 펴도 미화로 감지되니 말입니다. 오히려 저는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하지 않기로 선택한 여성들에 대하여 언급하지 못한 것이 더 마음 쓰입니다. 이런 곡절 때문에 마음에 병을 얻어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남성가부장적 주류의학의 감수성이 가 닿을 수 없는 변방에서 겪는 여성의 고통을 덜어줄 섬세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천천히 서둘러 만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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