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유기체·······

  사람 몸의 각 부분은 기계의 부품이 아닙니다.·······미토콘드리아는 독자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세포 하나하나·······피부에도 기억과 사유 능력이 있습니다. 심장은 다만 펌프가 아니고 뇌와 같은 성격의 기관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소화관에 있는 장신경은 자율신경이나 뇌의 기계적 조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소화 작용을 지휘합니다.

  한편 이렇게 독자성을 띤 각 부분은 상호연관성 없이 따로 떨어져 있는 고립 개체가 아닙니다.·······피부는 신경과 발생의 뿌리가 같습니다. 그래서 아토피 질환은 정신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중추신경은 장신경에서 진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화 상태는 감정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유기적인 복합생명체로·······몸의 각 부분은 상당한 독자성을 지니면서도 전체적 관련성을 놓지 않은 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부분마다 전체 운동의 과제와 일정을·······인지하여 유기적으로 정보와 에너지를 교환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부품이 조립된 기계로 보는 남성의학은 근본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128-129쪽)


5년 전, 40대 초반 제자 하나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월경 출혈이 20일째 멈추지 않아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수술해야 한다 하더랍니다. 즉시 예약은 잡았지만 몸에 칼 대는 게 무서워 한의사인 제게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뜸 수술을 보류하고 자궁과 대화하라고 말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듯, 증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진심을 다해 왜 그런가 물어보라 했습니다. 그는 과연 선생님다우신 대답이라며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 날 밤늦게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출혈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네 남편이 일시적 현상이라 하지 않더냐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시냐고 그가 놀라 되물었습니다. 이틀 뒤에는 그도 인정할 것이다, 웃으며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상황은 거기서 이미 종료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신비론 냄새를 맡는 분은 아무래도 기계론mechanism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 기계론으로 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밖에 달리 길은 없을 것입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수술 대상으로 진단한 병이 대체 어떤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넘어갔을까요? 이거야말로 신비한 논리입니다. 아니면 산부인과 전문의의 오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 만에 출혈이 우연히 멈출 수 있는 병 아닌 병을 수술 대상으로 진단한 그 산부인과 전문의의 의학은 과연 무슨 의학일까요? 그게 바로 서구의학, 그러니까 기계론에 터한 의학입니다. 기계론 의학으로 오진한 중병이 우연히 나았다 한다면, 이 또한 기막힌 신비론 아닌가요. 신비론은 필연적으로 기계론과 적대적 공생 관계입니다.


유기체로서 생명은 신비론과 기계론이 마주하는 변방에 핀 실재의 꽃입니다. 유기체에는 기계와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신비성이 존재합니다. 유기체에는 신비와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기계성이 존재합니다. 이 모순이 분열 없이 공존하므로, 이 역설이 멀쩡하게 살아 있으므로 양쪽 모두한테 오해받거나 공격받습니다. 예컨대 사회정치적 유기체론은 보수·반동 집단이 체제 유지를 위해 신비론의 외피로 써먹는 저급한 이데올로기입니다. 대놓고 이 말을 떠벌이지는 않으나 저간 우리나라 지배층의 논리가 꼭 이와 같습니다. 극단주의가 어찌 악용하든, 유기체로서 생명의 본령은 각기 독자성을 지닌 개체들이 구조-기능-정보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합을 생성·유지하는 운동입니다. 유기체의 연합 운동은 신비에 기댄 권위, 기계에 기댄 억압 모두에 저항합니다.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개체는 부품이 아닙니다. 고유한 주파수를 지닌 생명입니다. 상호 소통합니다. 상호 소통하는 개체들의 연합인 전체는 불변하는 실체가 아닙니다. 연합의 과정을 따라 흘러가는 사건입니다. 사건에는 권력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유기체 생명 안에서는 극단의 통합도 극단의 해체도 불가능합니다. 우리사회가 정녕 유기체로서 생명에게 배우려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매판독재분단고착 세력이 쥔 극단의 패권부터 분쇄해야 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실체화한 전체주의 세력의 수탈을 더는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전이 교설하는 각자도생의 구원론을 타파해야 합니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해서 세월호사건이 남의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네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이 참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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