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남성문명은 자기중심적 일방주의라는 기본 특성을 지닙니다. 일방주의는 물론 세계의 대칭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권력적 속성과 맞물립니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자기 아래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권력은 맞은편 대등한 지점에 무엇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성문명은 언제나 공격과 정복을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정치, 경제, 학문, 교육, 예술, 종교 모든 분야가 오로지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로만 흘러갑니다. 그 결과 인류는 다양한 구획, 사실상 수직적 계층구조로 분할되고, 그 분할에 따라 차별과 착취를 당합니다. 한쪽에서는 굶어죽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천문학적 돈을 날리고 있습니다. 감세를 통해 부자들의 배는 더욱 불리고 그렇게 빈 재정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충당합니다. 세계평화를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팔아먹습니다. 당장 우리 사회만 해도 이런 유의 어이없는 현상은 이미 일상화되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사회의 이런 굴절은 지구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여성문명이라는 대안을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입니다.(110-111쪽)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철저徹底하다’가 있습니다. 이 말보다 의미가 다소 약한 것으로 ‘도저到底하다’가 있습니다. 도저하다는 말은 그다지 잘 쓰지 않습니다.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도저하다는 말이 철저하다는 말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자주 쓰는 말은 갈수록 감수성을 무디게 해서 느낌이 둔해지다 못해 의미까지 바래지게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사회에서는 멘토, 힐링 따위의 말입니다. 이 두 말은 싸구려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자본이 포장만 바꾸어 상업적으로 대량 유통시키고 있어서 눈만 뜨면 우리 앞에 나타나 돈을 뜯어낼 따름입니다.


의도적 유통이 빚어내는 말의 타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주 쓰게 하여 그 말의 함정이나 독성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정치와 문명을 지배하는 자들은 바로 이런 주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패권을 차지하고 유지합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미래, 행복, 창조, 애국, 통일 따위의 말들이 그러합니다.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실체가 없음에도 뭔가 있는 것처럼 현혹시키거나, 본디 좋은 의미인 것을 왜곡하여 본질을 흐리게 하는 전략에 동원된 말들입니다. 언어 독점으로 백전백승하는 이미지 정치의 전형입니다.


영어를 위시한 인도-유럽어의 논리, 정치, 문명 체계가 세계를 제압한 현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연스러운바 되었습니다. 함정을 안락으로, 독을 약으로 받아들인 채 인류는 노예 상태에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체계에 여러 이름을 붙일 수야 있겠지만 남성가부장적 특성이야말로 그 함의의 고갱이임이 분명합니다. 대다수 여성들조차 중독되어 있는 남성가부장적 언어의 장악력은 전방위·전천후입니다. 우울증도 남성가부장적 언어-논리-정치-문명의 산물이자 희생양입니다. 본령이 이렇다면 우울증의 진단·치료는 남성가부장적 언어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우울증에 대한 남성가부장적 언어란 무엇일까요? ‘우울증은 미친 것이다.’로 시작하는 통속한 오해에서 ‘우울증은 뇌질환이다.’로 끝맺는 의학적 이해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바, 그 일방적·환원적·기계적 담론들입니다. 이 시각에도 이렇게 지절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부분의 우울증은 약만으로 완치됩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25주 과정 대인관계치료 프로그램에 초대합니다.” 우울증 진단·치료에서 진실의 비대칭적 대칭성, 그 전체상을 고려한 담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성적인 쌍방향 언어가 필수불가결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성가부장적 언어가 내면화된 어머니의 폭력으로 수십 년 동안 기조우울증의 포로로 살아온 중년 여성이 있습니다. 그 또한 남성가부장적 언어가 내면화된 어머니에게 관통상을 입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어머니와 똑같은 방식으로 양육해왔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목 놓아 울었습니다. 시의와 상황에 적합한 제 조언에 맞추어 자신과,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생애 최초로 여성적인 쌍방향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저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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