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우울증,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가 상담하러 와서 드물지 않게 하는 말입니다.
“제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무슨 상처를 받은 기억도 없고…. 제 성격이 문제겠죠? 사실 좀 게으르거든요.”
우울증으로 사고와 행동의 지체가 일어나 기민하게 일하지 못하거나 뒤로 미루기를 거듭할 때 본인도, 주위사람도 게으르다고 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게으른 성격이 문제라는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성격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예가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게으른 것은 대부분 이기적인 경향성과 맞물립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란 날아가던 새가 싼 똥에 맞을 확률보다 낮습니다. 우울증의 핵심에 자기모독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명백한 질병을 사람 그 자체와 혼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우울증은 결코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90-91쪽)
한의원에 진료 받으러 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흔하게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저는 무슨 체질인가요?”
왜 체질이 궁금할까요? 이것은 맑은 궁금증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귀책사유를 자신한테서 찾으려는 억압된 마음의 책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 대답은 늘 ‘체질은 없다’입니다. 체질을 인정하지 않는 저의 자세는 성격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마음병으로 상담하러 오는 사람 자신과 그 주위 사람들도 흔히 성격을 입에 올립니다. 이치를 따지기 이전에 저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단호히 부정합니다. 성격이 마음병의 원인이라거나 성격 자체가 병이라거나 하는 따위의 말은 결국 아픈 사람 자신에게 책임을 몰아버리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성격이란 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또는 그 사람 자신인 불변의 특질이니 말입니다. 저는 성격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넘어서 ‘성격 자체가 없다’고까지 날 세워 말합니다.
지난 가을, 쉰 살 썩 넘긴 제자의 서른 살 갓 넘긴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이제까지의 삶이 늘 경쾌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그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비난과 결국은 그런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체념이 담겨 있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한 답변을 들은 뒤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격이 아니다. 결단을 미루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우울증의 심연에는 자기부정이 놓여 있다. 자기부정은 부재와 상실의 상처에서 온다. 너는 아픈 것이다.”
그는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와 그의 어미가 그 동안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지 짐작하며 저 또한 먹먹해졌습니다. 지금 어떤 모습일지 맑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불러다 막걸리 한 잔하면서 또 그 마음 한 자락을 살펴보아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