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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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증, 정신력이나 인내력으로 고칠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우울증을 호소하면 흔히 보이는 반응은 이렇습니다.

  “나약해빠지긴….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 너만 왜 징징대는데?”

  요컨대 정신력의 문제고, 인내력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정신력이나 인내력이 강했으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므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정신력이나 인내력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약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한테 정신력과 인내력을 요구하며 질타하는 것은 진실과 독려의 마음을 전한다기보다는 비난과 무관심의 의도를 은폐하려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네가 우울증이라고? 야, 야, 그럼 난 벌써 자살했다!”

  이런 반응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나도 힘들긴 마찬가지인데 너보다 정신력과 인내력이 뛰어나서 견디는 것이라고 자랑하는 꼴입니다.·······

  우울증은 정신력이나 인내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약해서 걸린 사람한테 ‘징징’, ‘자살’ 운운할 일은 아닙니다. 작은 공감과 간단한 격려 한 마디가 아까워서 가시 돋친 평가와 비교를 던질 것이라면 차라리 반응 없이 침묵하는 게 돕는 길입니다.(89-90쪽)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우울과 강박으로 뒤엉킨 젊은 여자 사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이미 어머니의 강박에 수직 감염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성적인 학대 또한 삶의 전 과정에 걸쳐 반복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심리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는 수시로 정신력을 거론하며 압박했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치료를 그만두었습니다. 얼마 뒤, 그는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폐쇄병동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부모가 그를 거듭해서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같은 의자醫者에게 회한이 사무쳐오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현실적으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대하는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정신력 운운하는 훈계를 일삼습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학대는 말할 것도 없고 방치 형태의 학대나 애지중지 형태의 학대 모두 자녀의 정신력을 파괴합니다. 자신들이 파괴해놓고 그 파괴의 결과 때문에 고통 받는 자녀에게 정신력을 요구하는 것은 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왜 걷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폭력을 교육이라 우기고 방치를 자유라 둘러대고 애지중지를 학대라 여기지 않는 대한민국 부모 대부분은 바로 이 순간에도 우울증 앓고 있는 자녀를 정신력·인내력의 구덩이에 파묻고 있습니다. 저들은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울증이 부모의 학대와 인과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다른 경우에도 우울증을 정신력·인내력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은 암을 체력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정신력·인내력은 이성·의지의 남성적, 해석적 힘입니다. 정신력·인내력으로 우울증에 대처하는 것은 일종의 진압입니다. 진압은 죽음을 부릅니다. 죽음을 부르는 힘이 어찌 치유이겠습니까. 우울증은 감성의 여성적, 공감적 번짐에 목마른 병입니다. 목을 축여주려면 있는 그대로 함께 느끼고 다독여야 합니다. “그런 것은 잘못이야, 이래야 해!”가 아닌 “그래, 그렇구나!”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금지와 당위라는 평가에 앞서 조건 없는 인정이 필수적입니다.


우울증은 분명한 실재the Real입니다. 실재라는 말은 몸 감각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울증이 감성 또는 정서 중심으로 발현되는 생명력 전체의 교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관념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범주 오류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환유換喩 독단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력·인내력은 개인적 소유물처럼 인식됩니다. 실재를 균열시키는 폭력입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남성가부장문명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바야흐로 우울증에 대한 여성적 치유 패러다임의 터를 닦을 때입니다. 공감과 인정이라는 은유, 그 공동체적 향유야말로 분명한 치유 실재the Real입니다.


세월호사건, 이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국가의 이름으로 공동체 구성원을 살해하는 장면을 현장중개하고 끊임없이 왜곡하고 끝끝내 내팽개침으로써 공동체 전체를 우울증에 빠뜨린, 우울증 역사에 길이 남을 실로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질병이 어떻게 권력의 범죄와 관련을 맺는지 압도적 풍경으로 그려낸 불멸의 영상입니다. 유족을 비롯한 시민들이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한, 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권력은 때로는 비아냥거림으로 때로는 잔혹함으로 이들을 짓밟아 역사에서 깡그리 지워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정신력·인내력까지 수탈하여 죽음으로 내몰겠다는 고의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예은 아빠 유경근 씨가 트위터에 최근 올린 글입니다.


“매일 좌절하고 매일 다시 일어나야 하는 현실이 징그럽다. 잠시라도 주저앉은 채 하늘을 보고 싶은데, 아니 조금만 숨이라도 고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죄를 짓는 것 같다. 어차피 죄인으로 가겠지만....”


누가 감히 정신력·인내력을 말합니까. 공감·인정도 턱없거늘. 아, 사람아,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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