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우울증, 마음의 감기 따위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이른바 ‘꿀꿀함’의 정도가 깊은 기분부전不全 정도에서 다루고 말 병이 아닙니다.·······우울증은 삶의 과정에서 영그는 의미 문제를 관통하는 병입니다. 의미는 어찌 보면 그저 관념 놀음에 지나지 않은 듯해도 생명에게 마음이 있는 한 치명적 존재 가치를 지닙니다. 따라서 우울증은 생명이 지닌 마지막 질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걸릴 가능성이 있어서 감기라는 묘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적절한 묘사가 바로 호도의 함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울증을 이른바 기분장애로 분류하고 있는 미국식 사고방식이 본질을 호도하는 큰 요인입니다.·······우울은 기분이 아닙니다. 존재의 심연에 닿는 문제입니다.(87-88쪽)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SM은 정신의학계에서 경전과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제5판은 20개 범주에 300개 이상의 장애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런 분류는 범주 진단과 차원 평가를 혼합한 것으로서 증상과 증후군을 토대로 하여 만들었습니다. 임상적 유용성과 타당성을 위한 개선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번잡하고 어수선합니다. 무릇 범주란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나 존재의 형식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의 범주가 20개라면 이는 이미 범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려 300개가 넘는 장애의 숫자에서 제약회사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늘을 사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DSM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진실에 육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탐욕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제5판은 제4판에서 사용했던 기분장애라는 용어를 없앴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에 대한 근본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은 여전히 우울증이 인간 존재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깊고 무거운 질병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의 얄팍한 인식과는 달리 우울증은 삶의 의미,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질문의 늪에 빠져 온갖 정서의 향연, 그러니까 재미를 놓쳐버리거나, 재미 감각을 박탈당하여 의미만 부여잡고 살다가 무의미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두껍고 단단한 질병입니다. 의미-없음과 재미-없음의 끝은 존재-없음, 그러니까 자기부정입니다. 감기처럼 가볍게 오지만 죽음처럼 무겁게 주저앉습니다. 업신여길수록 우울증은 치명상을 입힐 것입니다. 정치든 문화든 모든 인간행태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에 현혹된 탓에 누구나 우울증에 관해 쉽게 말합니다. 예능 프로에 나와서 미셀러니 떠들며 웃는 연예인 수준에서 이제는 아무라도 우울증과 그 치유를 입에 올립니다. 어줍지 않은 처방들이 난무합니다. 누군가 ‘나 우울증이래.’ 하면 대뜸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러고 살아.’ 하고 반응합니다. 말의 인플레이션이 생각의 인플레이션을 나은 결과 사회 전체 분위기는 이미 우울증에 시큰둥해져버렸습니다. 유명인 누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은 아마 빚에 쫓겨 자살했다 쯤으로 들릴 것입니다. 하기는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어두운 진실에서도 아무런 공적 어젠다가 수립되지 않는 사회인데 그 연유가 우울증인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대한민국, 마음의 감기 따위에 걸려 사람이 죽어나가는 아사리판이 되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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