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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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정적 대면에서 눈빛이 꺾이는 병·······

  삶은 기회의 문제입니다. 기회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선택은 결단의 문제입니다. 결단은 결정적 대면에서 내리는 순간 판단의 문제입니다. 이런 순간순간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빚어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울증 환자는 눈빛이 꺾입니다. 현실은 가차 없이 꺾인 눈빛을 밟고 지나갑니다.

  현실이 비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생명은 각기 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이치이므로 오히려 거기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차후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순간순간 눈빛을 꺾지 않는 일은 생명인 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순간집중력으로·······자기 생명의 경계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내면의 힘을 복원해주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요체입니다. 자기 생명의 경계를 체득해야 남의 생명의 경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남의 생명의 경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비로소 자기 생명의 경계를 아낌없이 허물 수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는·······앞뒤가 바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기 몸이 없는데 어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붓다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 이로움을 모르는데 어찌 남의 이로움을 알 것입니까? 우울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벗이여, 부디 결정적 대면에서 눈빛을 꺾지 마소서.(75-76쪽)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이라니? 돈이 없어? 집이 없어?·······남편 의사겠다, 대체 뭐가 문제야?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 감사할 줄 모르니 그렇지!”


40대 전업주부 한 분이 우울증 때문에 치료받는다고 하자 친정어머니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 열이면 아홉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뭘 그리 많은 것을 가지셨습니까?”


그 분은 대답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제가 대신 답변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죄다 돈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딱 하나, 돈입니다. 돈을 마음의 근거로 삼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머니는 딸에게 어떤 종교 단체 기도 모임을 추천해주셨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돈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우울증 아닙니다, 교만해서 미처 몰랐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뭐 이런 것일까요? 이런 논리라면 신이 돈을 주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려 마땅합니다. 더 나아가 결국 돈의 있고 없음이 신의 사랑, 그러니까 구원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참담한 신앙, 참으로 참람한 신성모독입니다. 저는 단호하게 그런 종교행위에 발 디디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돈에 기대어 “눈빛을 꺾지” 않겠다는 생각은 비단 이렇게 종교하고만 결탁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 갑중의 갑이지요. 가난한 동네 노인들은 힘세 보이기 때문에 1번 찍는다고 합니다. 공부 잘하는 수재들은 같은 이유에서 ‘일베’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언론, 학문, 교육, 문화 등 사회 전 부문이 돈과 야합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돈이 모든 사회적인간의 근본과 수준과 질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그러나 돈만으로 살리는 눈빛이 사람의 눈빛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의 눈빛이 아닌 눈빛을 한 사이비 인종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미래는 더 비관적입니다. 어찌 할까요.


돈에 기대어 눈빛을 살리는 자들은 그대로 놓아둡시다. 바로 그 눈빛이 저주로 저들에게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기대어 눈빛을 살려냅시다. 나는 네게 기대고, 너는 내게 기대어 눈빛 꺾지 않는 기개를 함께 단련해갑시다. 너와 나의 연대로 너와 나의 순서를 하나로 만듭시다. 나의 사랑이 너며, 너의 이로움이 나도록 합시다.


바로 이 숭고한 공존이 하느님나라이며 불국정토입니다. 하느님나라, 불국정토는 이렇게 오늘 너와 나의 우울로 피워낸 들 백합이며 우담바라입니다. 희망은 내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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