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미안함(죄책감)이 사무치는 병·······

  제게는·······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습니다. 저는 이 딸아이에게 깊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늦게 낳았기 때문에 젊은 아비처럼 열정적으로 기르지 못한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증에서 기인된 잘못된 판단과 무지로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지요.

  첫돌이 막 지난 아기를 급작스럽게 생면부지 남의 손에 맡긴 일·······그리고 생후 3주 만에 발견한 사경斜頸torticollis이란 병을 치료하는 잘못된-인용 시 첨가- 긴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외상trauma이 아이에게 남긴 흔적을 목하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 치유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가슴은 무거운 돌덩어리를 안고 갑니다.·······지울 수 없는 미안함으로 온 영혼이 떨려옵니다.(66-67쪽)


말과 행동을 통해 빚어내는 사회관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 우울장애를 깊숙이 파고들어 심리와 일상에서 평화가 쩍쩍 갈라지기만 하는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흐느끼며 훌쩍이며 그가 엮어낸 삶의 이야기들은 그다지 충격적인 것도 없고 그다지 비통한 것도 없었습니다. 부모가 늘 하는 말, 늘 하는 행동의 표면에 돋아 있는 미세한 가시들이 끊임없이 찔러대어 상처 위에 상처가, 또 그 위에 상처가 덧붙으면서 그는 만성적인 불안·우울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부모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그의 나약한 정신력과 잘못된 인격을 거론하며 책망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아버지의 남성가부장적 공격에 대해 같은 여성임에도 도리어 방조로 일관하는 어머니가 결정적 장면에서 그에게 던진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히고는 했습니다. “세상에 나 같은 엄마 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맞습니다. 그런 엄마 어디 또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자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미안함(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부모니까 말입니다. 물론 이런 마음이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신드롬에 속수무책 이용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오늘 우리사회처럼 ‘닥치고’ ‘대박 나는’ 것을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현실에서는 아주 익숙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생명이 자식-생명을 애틋하게 여기고 늘 뭔가 덜 해주었다고 느끼는 것 자체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는 정도와 방향입니다.


제가 딸아이한테 가지고 있는 “미안함(죄책감)”이 때로는 잘난 척으로 읽히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가까이서 저를 지켜본 제자들은 ‘선생님께서 미안해하신다면 저희들은 뭐가 됩니까?’ 식으로 반응합니다. 이러면서까지 제가 미안함(죄책감) 문제를 왜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는 그 자체가 문제라는 사실 말입니다. 부모의 부재와 상실이 교차·반복되는 생애 초기의 상처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귀속적 근거가 전혀 없는 미안함(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딸아이한테 미안한 일을 했느냐, 죄에 해당하는 일을 저질렀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미안함(죄책감)은 언제나 날래게 깊숙이 영혼을 찔러 들어오는 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엄마와 존재론적 미분화 상태에 있는 영유아기 아이에게 자기 존재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엄마입니다. 이를테면 영유아기는 ‘I am you.' 시대인 것입니다. 이때에 버림받은 아이는 버림받은 순간 이후 급격히 감각된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 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를 부정하면 존재의 기원·근본이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그 자기부정은 엄마의 감정을 전유합니다. 이른바 존재론적 미안함. 존재론적 미안함은 “지울 수 없는 미안함”으로 온 영혼을 떨려오게 만듭니다.


오늘 여기서 다시 한 번 저의 “지울 수 없는 미안함”을 우뚝! 직면함으로써 다시 한 번 딸아이를 생각합니다. 실로 육십갑자 돌아서야 존재론적 미안함 저 밑동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비 영혼에 한 소식 당도한 이때, 딸아이 삶에 새로운 빛 닿아 비로소 담담한 풍경이 열리고 있습니다.


저를 찾아온 그 젊은이에게도 존재론적 미안함이 묵직하게 섬뜩하게 똬리 틀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나 같은 엄마 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라는 말이 버림의 선언임을 그 어머니가 깨닫지 못하는 한,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부디 그 젊은이가 고통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론적 미안함을 직면하는 길 찾아가도록 두 손 모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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