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약물치료에 매달리는 현대 정신의학과는 다른 각도에서 진행되는 뇌 과학 흐름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제약회사의 상업전략이 개입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떠나 관련 학계의 절대고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심지어 정신계의 큰 스승인 달라이라마가 결합된 연구 흐름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상황입니다.

마음과 뇌. 어쩌면 서양문명에서 이 화두는 자신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중대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정신의학 임상에서 뇌로 정신 문제를 환원하고 있지만, 이는 패러다임 전반을 회통하는 설명체계를 동반하지 않은 것이어서 앞으로 상당 기간 논의가 계속되어야 할 전망입니다.·······마음과 뇌 문제에서 뇌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려면 아직도 먼 길이 남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마음과 뇌를 어떻게 생각하고 거기서 생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순수하게 과학이나 의학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을 이미 떠났습니다. 정치경제학적 역학이 무수하게 교차하는 복마전의 한복판으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그나마 어떻게 바르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정녕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든 것입니다.(45-47)

 

40대 중반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사업가로 성공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지만 늘 무의미감에 시달린다고 했습니다. 순간마다 죽음에게 마음의 틈을 내준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만 해도 수천만 원의 돈을 썼다고 했습니다. 단학을 포함한 마음 수련 계통 단체의 인성 프로그램에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를테면 마음 또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참된 나를 찾으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내러티브를 보유한 일련의 영성 마케팅에 수탈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당장 또 한 단계 높은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거액의 돈을 결제해야 되는 상황에서 고민 끝에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단계를 높여갈수록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없습니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참된 나를 만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참된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말 참된 나가 있다면 그 나는 남에게서 찾아지는 것이지 홀로 수련한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아마도 남에게서 찾아지는 나라는 개념을 수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다음 달 미국의 세도나(이른바 영적 기운이 매우 강한 수정산을 품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 소재 도시)로 떠나며 다녀온 뒤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에게 딱 한 마디 당부의 말을 건넸습니다.

 

“human scale!”

 

마음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많이 지닌 사람일수록 마음에 대해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 충격적인 것도 없습니다. 이른바 대승불교 선지식들이 그렇고, 마음수련 전문가들이 그렇고, 정신치료 전문가들이 그렇습니다. 마음이 한 인간의 내부에 있는 어떤 존재being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내부, 예컨대 뇌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은 인간이 외부 조건과 만나는 가장자리, 그러니까 표면에서 생성되는becoming 사건doing입니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뇌는 마음-사건을 중개하는 인텔리전트 터미널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오해는 뇌를 인간의 내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뇌의 본질은, 이 그러하듯, 피부입니다. (그런대로 깨인 사람들이 장을 제2의 뇌, 피부를 제3의 뇌라 하지만 완전히 거꾸로 된 것입니다. 장은 제2의 피부, 뇌는 제3의 피부입니다.) 다시 정색하고 말씀드리거니와 마음은 피부 사건입니다. 상호작용 그 자체입니다. 관계운동 그 자체입니다. 홀로 정좌하고 앉아 들여다보는 대상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시체마음입니다. 만일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아는 시선이 있다면 그 시선은 해부학일 따름입니다. 살아 있는 마음은 해부가 불가능합니다. 오직 상호작용의 찰나마다, 관계운동의 순간마다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집니다. 그럼에도 해부학에 미혹되어 선, 명상, 단학 따위에 빠져드는 것은 마음조차 소유하려드는 탐욕이자 허영입니다. 상호작용, 관계운동인 한, 마음은 내가 너를 만나는 바로 그 시공에서만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하여 마음은 아프며, 흐르며無常, 고립된 실체가 되지 않는無我 것입니다. 이런 마음만이 일심一心입니다. 일심만이 화쟁和諍합니다. 화쟁만이 무애無碍로 나아갑니다.

 

마음을 뇌에 썰어 넣고 프로작, 인지행동치료, 인성 프로모션으로 포장해서 팔아먹는 자들이 구세주처럼 거들먹거리는 세상입니다. 막장입니다. 막장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세도나를 기대하고 있는 그 여성을 위해 저는 두 손을 모으고 삽시간 정성을 일으킵니다. 문득 창 너머 나지막한 용마산을 바라봅니다. 마음다운 마음이 어찌 세도나의 수정산에만 있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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