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기계적으로 통제되는 것으로 세계를 사물화한 이 문명·······은 심지어 마음조차 뇌에 가두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뇌를 포함한 우리 몸 전체가 삶의 조건과 상호작용하는 사건·운동doing이지 뇌의 산물being이 아닙니다. 몸 문명이 내다버린 마음은 무한히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유로서의 생명 현상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복원은 자유의 복원입니다.·······

  몸 문명이 함부로 다룬 마음 문제 가운데 가장 소홀히 여긴 부분이 마음의 병을 인식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의 병을 미친 것으로 몰아버리는 인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정신병자라는 용어 자체가 욕설로 쓰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치료 또한 약으로 뇌신경을 조절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정신과의사가 정신을 치료한다기보다는 뇌라는 몸의 일부를 치료하는 존재임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몸 문명이 심신이원론에 터 잡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마음을 몸의 하부단위로 여긴 대표적인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38쪽)


18세 소년이 찾아왔습니다. 소년은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경멸감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특정 동물로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소년이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저를 자기 자신의 탐욕을 투입하면 행복이 튀어나오는 자판기로 여깁니다.”


소년은 현재 정신과 양약을 하루에 네 알 씩 먹고 있습니다. 조현병(정신분열증), 발작Seizure, 양극성장애, ADHD, 행동장애 등의 증상을 억제하는 약들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진단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중복·과다 처방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심지어 상충되는 약물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간취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가 소년을 대하는 자세와 정신과 양의사가 소년을 대하는 자세가 두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는 바로 그것. 소년의 마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다, 가 그 하나입니다. 소년의 뇌에 뭔가를 입력하면 기계적으로 뭔가가 출력된다, 가 다른 하나입니다.


소년은 기본적으로 영특합니다. 휴머니스트 자질을 지녔습니다. 이런 아들을 정신장애 상태로 몰아넣고도 자기 자신의 욕망에만 집착하는 어머니도, 그 곡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화학합성약물이나 ‘집어넣는’ 의사도 소년의 마음 진경을 들여다볼 생각이 도통 없습니다.


소년의 삶과 고통, 그리고 치유 과정에 소년 자신은 빠져 있습니다. 소년의 내러티브에 소년은 없습니다. 어머니와 의사는 ‘따로 또 같이’ 소년의 마음을 몸, 그러니까 뇌에 묶어 사물화해 놓고 그것을 착취합니다. 사랑과 양육의 이름으로. 의학과 치료의 이름으로.


소년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돈으로 그의 날개를 묶어 놓습니다. 소년은 정신과 의사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혈액검사 결과로 그의 날개를 묶어 놓습니다.


소년은 어머니가 밥을 해주지 않아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왔다며 배가 고프다고 했습니다. 저는 자주 가는 소박한 백반 집으로 소년을 데리고 갔습니다. 진짜 ‘엄마 밥’이라 감격하며 맛있게 먹는 소년의 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습니다. 정녕 이 시대가 마음의 시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날선 각성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소년을 보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용마산 머리 위에 오리온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싸늘한 밤공기가 등을 떠밀었습니다. 옳지, 따뜻한 골목 카페에서 등 기대고 앉아 맛난 술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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