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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흔히 받는 질문입니다.
“한의사가 정말 우울증을 고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많은 뉘앙스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한의학과 한의사에 대한 경시, 우울증은 양의에서 약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정신질환이라는 고정관념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겠지요.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양의사가 정말 ‘화병火病’을 고칠 수 있습니까?”(34쪽)
40대 여성 한 분의 우울증을 상담과 한약으로 치료하는 중입니다. 친정어머니가 계속해서 다른 의사, 그러니까 양의사를 알아보고 그리로 옮길 것을 종용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의사가 무슨 우울증 치료냐? 게다가 상담은 또 뭐고·······.” 물론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닙니다. 사기꾼이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환불해주지 않을 경우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겠다며 한의원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여성은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분명히 감지하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치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디 비단 저뿐이겠습니까. 많은 한의사들이 허약한 사람 약점 잡아 보약이나 팔아먹는 장사꾼 아니면, 삐었을 때 발목에 침이나 놓아주는 쟁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취급당해도 싼 자들이 없지 않으니 민망한 노릇입니다만, 사실은 일제식민지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양의사의 변방 개념으로 자리 매겨진 것이 근본 원인입니다. 이 문제는 법률의 개정과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을 통해 반드시 국가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할 중대 사안입니다. 지금처럼 매판세력이 지배하는 한 난망합니다. 그러니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의학이 구한 말 이 땅에 상륙하여 식민화가 시작된 이래 엘리트층이 지속적으로 그 의학의 추종 세력이 되면서 수천 년 내려온 자주적인 국민보건의료 전승은 주변부 담론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식민지 의식은 제국 본토보다 더욱 극단화되기 마련입니다. 이 땅의 양의사들은 심지어 “한의사들이 열등감으로 아무리 우리를 흉내 내도 결코 의사가 될 수는 없다.”고까지 막말을 합니다. 이런 흐름이 일반 시민에게까지 내재화되어 한의사가 무슨 우울증을 고치냐는 반응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심리상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리겠습니까.
그러나 서양의학은 보편의학이 아닙니다. 하나의 의학 패러다임일 뿐입니다. 서양의학만 과학인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하나의 과학 패러다임일 뿐입니다. 근거 없는 오만으로 양의사들 중 다수가 아무리 폄훼해도 한의학이 수천 년 동안 조선문명을 지탱해온 기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의학을 미신이라 하는 그들이 도리어 서양의학이 하나의 변종 종교체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서양 정신의학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폴 몰로니는 『가짜 힐링』에서 다음과 같이 냉엄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의학은 그 근간에서 과학적으로 (어쩌면 윤리적으로도) 이미 파산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모습의 정신의학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의 끄나풀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거대한 음모의 산물이다.”
‘음모의 산물’에 신앙을 바치는 것이 수천 년 전승을 존중하는 것보다 얼마나 쉬웠는지 100년 남짓한 시간에 이토록 상전벽해가 되어버렸습니다. 일제식민지와 미군정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이명박 이후 매판세력의 준동이 더욱 어지러워진 나라 상황 전체의 빛에서 살펴보면 서양 정신의학 종사자들이 우리 마음의 식민화에 충실히 부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프로이트든 프로작이든 서양 이론의 침대에 마음을 묶고 거기에 맞추어 다리를 늘이거나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 의료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듯 신식민지 상태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미국 정신의학 협회는 종주국다운 작업을 하나 했습니다. 1996년 화병火病을 문화관련 질환으로 DSM(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에 등재하고 이름을 한국어 기원 로마자로 Hwabyeong이라 표기했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그들을 추종하는 한국의 정신과 양의사들이 화병 치료를 자기 영역 밖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체 이 병을 어떻게 치료할까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울증 치료하는 한의사에게 적어도 이런 궁금해 하는 마음만이라도 가지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