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요구와 거절을 못함

이것은 거래 정서로서 ‘뻔뻔함’이 결여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뻔뻔함이란·······당당하게 거래하는, 밀고 당기는 타협에서 밀리지 않는 힘과 자세를 가리킵니다.·······‘봉’ 노릇 하지 않는 내면의 힘이지요.·······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자기 파괴의 비수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요구가·······대등한 소통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거절이········상호 자율적 개체로서 사는 힘을 북돋우기도 한다는 사실을·······(감지해야 뻔뻔해집니다.-인용 시 문맥상 첨가-)(21-22쪽)


20대 후반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본디 우울증이 있는데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갑자기 파혼을 선언하고 잠적해버려 창졸간에 마음과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저는 20대 초반, 1년 사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나이도 어렸을 뿐더러 무남독녀 외동딸인 제가 친척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장례를 포함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홀연히 초등학교 동창인 한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망연자실해 있는 저를 다독이며 헌신적으로 수습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중단했던 제 학업도 다시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까지 희생에 가까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님도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해주셔서 결혼을 약속하고 집까지 마련했습니다. 제 삶이 이렇게 거의 완벽할 정도로 안정을 찾자 비로소 그는 미루었던 군복무를 마치기로 하였습니다. 제대하면 결혼식을 올리자 하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났습니다. 이 가벼운 발걸음이 나중에 너무나 무거운 변화를 몰고 돌아올 줄 그 때는 몰랐습니다.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전혀 알 지 못합니다. 제대하자마자 저와 그의 부모님 앞에서 그는 돌연 파혼을 선언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런 삶을 살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질문 하나로 남은 그 선하고 슬픈 눈망울이 8년 지난 지금도 선연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대의 남자친구는 자기 파괴적 희생으로 사는 동안 서서히 영혼이, 그 내면의 힘이 소진되어갔을 것입니다. 자기 요구와 거절을 봉인하고 오로지 그대만을 위해 몰두함으로써 그의 실존은 공동空洞이 되고, 존재는 형해形骸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無에 묻혀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한 찰나 그는 가차 없이 발길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을 찾도록 놓아주십시오. 그 놓음이 기다림일지 포기일지는 천천히 그대가 결정하십시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여자 친구를 보살피는 동안 자기 자신의 우울증이 한 없이 깊은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갔다는 사실을 아마도 여자 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어떤 경로를 통해 깨달았을 것입니다. 물론 결별의 방식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사자에게 그 결단은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남자 친구 희생 덕분에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그 여성이라면 그가 최선을 다해 내린 결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 뒤 어찌 되었는지 알 지 못합니다.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는 그 여성의 눈망울만큼은 적어도 비관적이지 않았으니 두 사람 다 잘 견뎌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남에게 자기 자신의 요구를 당당히 말하고, 남이 자기 자신에게 해오는 요구를 당당히 거절하는 정서적 에너지, 그 건강한 뻔뻔함은 인간 존재를 지키는 처음 힘이자 마지막 힘입니다. 뻔뻔하게 소통해야 제대로 된 평등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제대로 된 평등 소통이 이루어져야 각자는 옹골찬 자율 개체로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구와 거절이 시드는 곳에 우울증이 무성히 자랍니다. 우울증이 무성히 자라나는 사회는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사회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사회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정당한 요구와 거절이 압살당하고 있습니다. “가만있으라.”고 질타만 하는 통치가 백전백승하고 있습니다. 병신년 벽두에 화두 하나 듭니다.


“오늘 이 국민의 가만있음, 그러니까 숨죽임은 과연 기다림인가, 포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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